brunch

노동의 궤적-대관의 삶(끝)

by LISA

쫓기듯 새롭게 발령받은 부서는 사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곳이었다. 대충 보기에 별로 중요해보이지도 않고, 정치부인지 IT부인지 정체성도 불분명해보였다. 심지어 집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출퇴근에 어림잡아도 3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깎인 평판을 만회할 방법은 결국 또 실력 밖에 없었다. '주요' 출입처도 아닌 곳에서 과연 어떻게 능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지만 역시 사람과 만나고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는 ABC에 충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출입하게 된 곳은 일종의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막 시작된 상황이었다.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기관장의 해임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그 시기가 언제인지만이 결정되기 전이었다. 후임자도 이미 일찌감치 정해져 있는 분위기였는데, 오래 전부터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서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새로운 부장은 "힘들겠지만 너한테는 기회"라며 꽤나 내 기사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마 본인도 조직에서 큰 어려움을 겪어본 뒤 재기하려는 상황이었기에 내게 마음이 갔던 듯 했다.


부서에서 기사를 키워서인지, 아니면 워낙 정무적인 출입처였는데 내가 몰랐던 것인지.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았던 출입처는 갑자기 메인 기사가 쏟아졌다. 기존 기관장은 결국 해임됐고 예정대로 레드 카펫을 밟고 나타난 후임 기관장은 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이미 언론사 주요 대표 및 간부급들과 다 연이 있는 그에게 나는, 매체 특성상 써먹기 좋은 주요 장기말이었을 것 같다. 관계는 나쁘지 않았고 취재는 제법 용이했다. '특별 관리 대상'에 들어갔는지 그의 측근들도 내게 필요한 정보를 제 때 제공했고, 급할 때는 직접 소통도 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조직 생활 10년만에 만난 암초보다 훨씬 큰 빙산을 만난 것은 역시 예상치 못한 순간에였다. 타이타닉호는 그래도 망원경으로 조금 미리 빙산을 보기나 했지, 나는 문제가 터진 순간에 인지했으니 곧바로 침몰하는 수 밖에 없었다. '특별 관리 대상'으로 챙겨주는 줄로만 알았던 기관장은 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 엄청난 뒷통수를 쳤다. 일부러 디데이까지 꽁꽁 숨겼으니 미리 알래야 알 수도 없었다. 회의장에서 경영권 관련 안건을 처음 봤을 때는 너무도 당혹스러웠고 관계자 모두가 내 표정을 살피는 듯 했다. 그래도 표정관리를 어느 정도는 했던 것이, '난 바보가 됐지만 그래도 이 정도 사안이면 회사 사장이나 고위 간부들은 알겠지. 외부에는 나중에 나도 알았다고 하면 되지'라는 생각 덕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급히 보고를 올린 뒤 회사에서 오는 연락으로 내 휴대전화에 불이 나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아, 지금 우리 진짜 뭐 됐구나."


그날은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밖을 배회하다가 집에 들어가서는 졸고 있는 남편에게 "우리 회사 망할 것 같은데 진짜 계란을 나눠 담을 때가 온 것 같다. 누가 나갈래?"라고 농반진반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그렇게 한 이틀이 흘렀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이 부서에서 명예회복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었고, 몇 일 후에 의결이 확정된다면 회사가 반토막 나게 생겼으니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전 부서에서 만난 암초와 비교하면 이건 너무 큰 위기였다. 이전 부서에서의 트러블은 조직 내에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은 일에 불과했다면 이건 회사가 넘어가게 생긴 일이었고 나는 그 최전선에 서 있었다.


밤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름의 믿는 구석은 있었다. 취재원을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밀도 있게 관찰했고, 상대 조직의 약점도 파악했다. 전략이 먹힐지 안 먹힐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뭐라도 해봐야 했다. 뒤늦게라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사장과도 따로 만났다. 다행히 예전 부서장이었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고 나는 나름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코너에 몰렸던 사장은 안색이 정말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무모한 전략에는 두려움이 있는 듯 했다. 정치권의 심기도 거스르면 안됐고, 고려할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기자라는 것 외엔 아무 직함이 없지만 높은 분들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했다. 그래서 일부는 단독 플레이를 했다. 회사의 여러 사람이 고군분투 했겠지만 이번 일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 있었던 나는 몇 일 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공작질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다. 평소 쌓은 신뢰로 알게 모르게 도와준 사람들도 꽤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 예측은 유효했고, 반전은 마침내 왔다. 그 순간의 짜릿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회사를 지켰고 구성원 모두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경영진을 비롯한 모두는 기뻐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찝찝했다. 반드시 후과가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패자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면 꼭 반격을 맞게 된다. 나는 완전한 제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여전히 여러 존재가 두려워 자세히 기술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나름의 할 수 있는 후속 조치들을 혼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 없었겠지만 나는 최종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 조직을 골로 가게 할 뻔했던 그는 여러 이유로 자의 반 타의 반 사퇴의 길을 선택했다.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지만 굳이 먼저 기사로 내보내지는 않았다. (물론 속보부터 종합까지 미리 써두기는 했다.) 예상대로 긴급하게 회견이 잡혔고, 나는 이전 명절에 '떡값'이라며 받았지만 전혀 쓰지 않았던 상품권을 챙겨 나갔다. 봉투에는 '감사'도 아닌 '격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자괴감이 들었었는데, 그 봉투에 그대로 넣어서 갔다. 그리고는 집무실 문짝에 그대로 떡 하니 붙여두고 돌아서서 유유히 기자실로 왔다. 오늘부터는 눈 감고 제대로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일이 터진 지 보름쯤 되는 날이었다.


이후로 '대관'의 삶은 더 치열해졌다. 큰 불을 끄느라 신세 진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산을 해야 했고,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때문에 작은 제재나 경고에도 예민해져 업무의 온오프가 아예 불가능했다. 밤낮으로 이뤄지는 정보 수집도 정보 수집이지만, 기사를 쓰는 대관 기자는 더 희소한데, 기사에도 제약이 많아지고 정무적으로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갈수록 늘어나 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기자와 대관은 사실 썩 어울리는 단어 조합은 아닌데, 주요 언론사에는 있기 마련이고 그 인원이 굉장히 소수라 외부에서는 잘 알 수 없다. 회사에서는 경영진급이 아니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출입처에서는 갑을병정 중에서도 정 정도 되기 때문에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깨진다. 그렇다고 추후에 보상이 있느냐 하면 - 회사마다 어느 정도는 다르겠지만 - 딱히 그렇지도 않다. 나 역시 무슨 보상을 바라고 일하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내가 이 일을 하는 동안 회사에 더 이상 큰 위기는 없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한다. 하지만 굉장히 외로운 자리인 것은 맞다. 그래도 힘든 걸 알아주는 소수의 동지가 있고, 언젠가 다른 부서에 갔을 때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듯 하다. 10년이 훌쩍 지나 안 사실이지만, 우리의 영역은 우리의 예상보다도 굉장히 넓다. 어딘가에서 각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keyword
이전 11화노동의 궤적-원맨밴드와 팀플레이(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