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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궤적-원맨밴드와 팀플레이(3)

by LISA

중간관리자는 쉽지 않다. 일은 일대로 많고 위에서 아래에서 다 치이는 자리이다 보니 처세도 어렵다. 특히 사내정치가 발달한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10년 차를 넘겨 처음 맡은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수습 시절 이후 처음 해보는 경찰기자 업무는 거칠기도 했고, 원맨밴드처럼 일하는 게 익숙했던 내게 갑자기 생긴 강력한 부장 및 팀장과 10명이나 되는 후배들의 존재는 꽤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어느 출입처에서나 그랬듯 열심히 했고,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회사 생활 최초의 큰 암초로 남은 그 일이 있기까지는.


팀장은 나와 나이 차이나 연차 차이는 크지 않았고 원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같이 일해본 적은 없었지만 커리어가 좋은 사람이었고 팀장도 나를 성실하고 일 잘하는 후배로 인정했던 것 같다. 경찰기자팀 특성상 팀장은 엄한 아버지같고 부팀장은 어르고 달래는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된다. 각자 그 역할에 충실했는데, 문제점이라면 후배들과 세대 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이었다. 주 52시간제 시행 후 기자가 된 친구들은 우리 때와는 상당히 문화가 다르다. 업무의 온오프가 확실하기도 하고, 사생활 오픈은 싫어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요즘 어떤 상태인지는 위에서 알아주고 배려해주길 바라는 특징이 있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여럿을 보고 판단하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이들이 주류이자 다수가 될 것이므로. 이들과 같이 상생해나가려면 OB들이 적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좀 더 유연하게 타협점을 찾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어르고 달래는 엄마 역할에 충실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적으로 후배들은 내게 꽤 의지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엄격했던 팀장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불만이 쌓인 후배들이 하극상을 일으킨 양상처럼 됐다. 공식적으로 후배들은 피해자로 지칭됐으나 사실상 사내에서 반동분자들로 낙인 찍혔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벌어진 이상 나는 앞으로 같이 일해야 하는 후배들의 편에 서야 했다. 당시 판단이 바로 서지는 않았는데, 내 자리를 거쳐간 몇몇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한 뒤에야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다 보니 팀장을 비롯해 윗선들과는 자연히 대립하게 됐다. 나는 졸지에 팀장 자리가 욕심이 나서 하극상을 부추긴 중간관리자가 돼있었다. 사실 가만히 있으면 다음에 자연스럽게 팀장이 될 수도 있는 위치였는데 내가 굳이 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피해자로 분류된 후배들 대신,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였던 나는 꽤나 욕을 들어먹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윗선에서는 자신들의 인사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므로 누군가를 조져야 했을 것이고 그 타깃으로 삼기에 나는 가장 쉬웠을 것이다. 물론 갈등이 터지기 전에 조율하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없는 일까지 만들어 오해를 하고 욕을 해대니 억울하기는 했다. 태어나서 싫은 소리를 그렇게 들어본 적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산 적도 처음이었다.


후배들은 당시 나를 많이 의지했고, 나도 일부 기댄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와서 고백하건대 상당히 부담이 된 부분도 많다. 후배들도 연차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서로 갈등이 있었고, 팀이 와해되기 일부 직전이다 보니 다들 예민했다. 심지어 카카오톡 지라시와 통화 중 자동 녹취가 일상화된 세대라, 내가 난처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팀장이 사라진 상태에서 일이 펑크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나는 일은 일대로 하면서 늘 택시를 타고 관심사병들을 관리하러 서울 곳곳을 돌았다. 팀장과 친했던 일부 타사 선배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어쨌든 미운 오리 새끼처럼 된 팀을 이끄는 근 3개월을 최선을 다했고, 보도 면에서는 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인사철, 우리는 사실상 강제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내가 떠나던 날 수제 레터링 케이크에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표현해준 후배들을 보면서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도 같은 부서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들었다. 위가 바뀌지 않으면 이런 문제점은 매번 재발할 것이다. 왜 저런 철딱서니 없는 것들 때문에 위가 바뀌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답은 했다. 속칭 MZ가 점점 주류가 될 것이고, 조직이 그들과 일을 하려면 그들에게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연함이 필요하겠지만. 내가 실패한 부분은 그 조율하는 스킬이지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월이 그것을 평가해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이전에 그랬듯 후배들은 대체로 철이 없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또 나름의 저력을 발휘한다. 우리 모두 이미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약 1년의 팀플레이는 원맨밴드에만 익숙했던 내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조직 생활 10년 차 즈음에 한 번은 겪었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후로 지금의 위치를 회복하기까지 나는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지만, 그때 그 일이 있었기에 이후에 있었던 더 큰 산을 넘을 수 있었다고도 본다. 물론 그런 일을 두 번 겪고 싶지는 않고, 두 번 겪어서도 안 돼서 웬만하면 팀플레이는 지양하려고 하고 있다. 365일 24시간 깨어있는 삶을 살더라도 혼자 모든 걸 처리하는 게 역시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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