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¹ Ⅱ - 내 늙은 개의 남자친구

작가의 단편집 『습작』에 수록된 에세이 「친구」 ¹편과 짝을 이루는 글

by 벗곰

이 글은 「친구」¹의 뒷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선택과 비밀, 그리고 진실의 또 다른 단면을 다루었습니다.


-또 글에서 가난과 비밀의 냄새가….

-쉿. 조용. (˵ •̀ ᴗ - ˵)✧


나는 여태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어릴 때는 가난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친구가 없어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더불어 개를 길렀기 때문이기도.


나의 개는 진돗개였다.


영민했지만 까다로웠다. 녀석은 내가 주는 음식만 먹었다. 그것도 그냥 주면 안 먹었다. 내가 꼭 손으로 사료를 떠서 입에 들이대야만 조금 먹었을 뿐이다. 일평생 비쩍 말랐다.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오래 입원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엄마는 나의 간병을 맡아야 했다. 동생은 결벽증이 있어서 개를 싫어했다. 아버지에게 개밥을 좀 대신 주라고 부탁했다.


나의 개는 꼭 아주 깨끗한 물만 마셨다. 마당의 살짝 고장 난 수도꼭지 덕에 일단 마실 물은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때맞춰 사료를 줘야 했다. 마당에는 비둘기와 참새들이 날아들어 사료를 훔쳐 먹었으므로 미리 많이 두질 못했다.


아버지가 내 부탁을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나처럼 개에게 밥을 손수 떠먹였을 리는 없었다. 퇴원해서 돌아온 날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 녀석을 몰라봤다. 개가 아니라 무슨 뼈만 남은 작은 고라니 같았다. 녀석은 밥을 거의 먹지 않았던 걸까. 굶어 죽기 직전의 앙상한 몰골을 하고 나를 보며 꼬리를 쳤다.


나는 보호대를 착용한 채 뒤뚱거리며 개밥부터 퍼 날랐다.


그 뒤로 수술을 한 번 더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녀석이 정말 굶어 죽을까 걱정스러웠다. 나의 개는 조금 작은 잡종 진돗개였으나 그래도 한국에서 그 정도면 큰 개였다. 사회성도 부족했다. 믿고 녀석을 맡길 곳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기 친구에게 맡겨도 된다고 했다. 개 농장을 크게 한다면서 – 나의 개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인지 –싸늘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말했다.


‘됐어, 일주일인데 설마 굶어 죽겠어?’


나의 개는 또 일주일 정도 굶었지만, 목숨을 건졌다.


그 뒤로 크게 집을 비울 일은 없었다. 내가 본래 어디 잘 돌아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녀석은 살면서 수면 마취를 세 번 정도 했던 것 같다. 치석 제거를 했고, 중성화 수술을 했고, 치석 제거를 한 번 더 했던가. 양치를 싫어했고, 개껌을 사 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녀석의 이빨이 빠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사료를 믹서기에 갈았다.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진공 포장을 했다. 식사 때가 되면 뜨거운 물을 조금 풀어서 뻑뻑하게 만들었다. 숟가락으로 둥글게 그러모아 떠서 입에 가져다 대면 꿀꺽 받아먹었다. 그것도 많이 먹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그렇게 살렸다.


녀석이 7살 무렵에 가출했다. 당시 나는 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개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열린 대문으로 녀석이 사라졌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죽기 전에 자유롭게 살아라. 네 마음대로 자유롭게 떠돌아 보는 것도 좋지.’


나는 굳이 개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보름이 지났다.


그러나 당시 우리 집에 배달을 왔던 마트 직원이 제보했다. 집 근처 공원에서 떠도는 백구 한 마리를 보았는데, 이 집 개 같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개를 찾으러 갔다. 나는 엄마 전화를 받고 달려가 둘이 함께 녀석을 붙잡아 끌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나는 대문에 안전문을 설치했다. 싸구려 실내용 안전문을 몇 개 사들여 이어 붙였다. 아버지가 잔소리를 해댔다. 보기도 싫고 좁은 안전문 때문에 오가는 것이 불편하다고.


아버지는 내가 개 때문에 돈을 쓰거나 시간을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까짓 개, 잡아먹어도 아깝지 않다는 식이었다. 농담 삼아 푹 삶아 한 냄비라고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다.


나의 소중한 작은 친구는 말년에 정신도 흐려졌다. 똥을 싸고 그것을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못 먹게 파묻고 화를 내면 잠깐 도망갔다 다시 돌아와 기어이 다시 파내 먹었다.


마지막 죽기 전에는 환각에 시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녀석은 일평생 조용하게 집을 지켰고 헛짖음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죽기 며칠 전 밤새도록 혼자 울부짖고 울었다.


가족들이 개를 좋아해서, 집안에서 돌볼 수 있었다면 녀석은 더 오래 살았을까.


내 개는 설날 아침에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그 해는 내 아홉수 –내가 꼭 39살이 되던 해였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집안에 우환이 자꾸 생긴다면 하얀색 개를 기르면 좋다고. 그 개가 그 집의 우환을 막아준다고.

누가 말했다. 액땜을 한 것 같다면서.


도대체 무슨 액땜?

소름 끼치고 역겨웠다. 같잖은 미신이었다.


나는 그 해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었다.


오히려 과자를 실컷 먹어대 결국 당뇨 판정까지 받았다.


아무튼 내가 나의 개를 끝까지 기른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내 아버지는 그냥 별생각 없이 녀석을 데려왔다. 마당이 있으니 개 한 마리 기르면 좋겠다 싶었을 뿐이다.


사실 그는 나중에 품종 있는 좋은 풍산개 수캐도 한 마리 더 데려왔었다. 둘이 짝을 지어 강아지를 낳으면 그것을 팔아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풍산이 –수캐는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얼마 못 가 녀석을 개장사에 팔아버렸다.


두 마리중에서 어느 개를 남길 것인가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개를 가장 좋아했고 책임지고 돌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풍산이는 수컷이므로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다. 잔인해도 깔끔한 결말이다. 하지만 복실이는 암컷이므로 여차하면 녀석은 개 농장에 끌려가 일평생 새끼를 낳으며 학대당할 것이다. 비참한 운명들이 얼마나 또 쉽게 쏟아지겠는가.


‘복실이를 살려야겠어.’


아버지는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풍산이를 집에 남기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 선택을 존중했다.


장정 서넛이 몰려와 풍산이를 데려간 트럭이 사라지던 날, 복실이는 구석에 처박혀 벌벌 떨었다. 돌이켜보니 녀석은 그때부터 입이 짧아졌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나는 그 사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좀 놀랐겠다 –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금방 잊겠지.


그 사건은 쉽게 잊혔고 세월이 흘렀다. 십수 년이 지났다.


복실이가 죽기 며칠 전 녀석은 유난히 대문을 집요하게 노려보고 앉아 있었다. 그 대문을 통해 풍산이는 오래전 사라졌다.


녀석의 등 뒤에 앉아 지켜보던 나는 문득 그제야 풍산이를 다시 떠올렸다.


내가 풍산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복실이가 풍산이를 여태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직감 같은 것이.


나는 그제야 다시 생각했다. 나는 녀석을 위해 주인으로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으려나. 아니,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지?


복실이는 일평생 우리 집 귀염둥이 골드미스였다. 나는 백수였으므로 거지같이 입고 거지같이 먹었지만 그래도 복실이한테만큼은 아낌없이 돈을 썼다.


복실이는 입맛이 까다로웠을 뿐 그 점을 제외하면 사실 기르기 힘든 개가 아니었다. 혼자 조용하게 잘 지냈고, 대소변을 잘 가렸고, 사람에게 온순했으며 눈치가 빨랐다. 게다가 밖에서 길렀다. 털갈이를 신경 쓰지 않았고 발톱을 깎지 않아도 되었다. 목욕도 여름에 서너 번 시켜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늙은 개가 되면서 이야기는 좀 달라졌다. 병원비가 들었고, 좋은 사료와 영양제가 필요했다. 겨울에는 추위를 많이 타 따뜻한 옷이 필요해졌다. 어느샌가 녀석의 걸음걸이가 어기적어기적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뛰지 않았으며 얼른 집으로 들어가 대부분 잠만 자고 싶어 했다.


복실이는 한평생 마당에서 홀로 지냈다. 내가 녀석을 선택했고, 녀석의 짝을 팔아버렸고, 그럼에도 밥까지 떠먹이며 녀석을 살렸기 때문에.


복실이는 나를 정말 좋아했다. 그러나 녀석의 진짜 남자친구를 냉정히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바로 나였다.

복실이와 풍산이 모두 그 사실을 모르고 이 집에 왔고 모른 채 떠났다.


나는 살면서 길렀던 나의 몇몇 개들과 더불어 복실이를 가장 사랑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보다, 복실이에게 가장 냉혹한 선택을 한 사람도 나였다.


녀석은 나의 비밀을 용서해 줄까.


복실이의 마지막을 다룬 나의 글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거짓을 적은 것은 아니다. 사실 그대로 썼다.


그럼에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 글을 또 썼다.


나의 친구, 친구, 친구들,

이 비밀은 또 얼마나 오래된 것이었는지.


보고 싶구나.


¹ 참고 : 친구 Ⅰ

https://brunch.co.kr/@icynigh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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