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슬퍼도 - Since 1985. In South Korea.
어릴 적 우리 집은 사실 좀 많이 가난했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나도 벌써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나이가 되었을까.
연탄 창고를 개조해 슬레이트 지붕을 덮어 만든 작은 시골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열일곱 살이 되는 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 그런 집은 제법 흔했다. 당시 내가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는 아파트가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외벌이 말단 공무원이었다. 엄마는 아팠다. 두 살 터울 남동생은 틱장애와 ADHD를 앓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으로부터 여자아이가 인물은 없다는 평을 받았다. 사실 공부는 제법 했다. 나는 집중력이 아주 뛰어났고 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따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 촌 동네 시골 학교에서 언제나 1, 2 등을 다투었다. 그래서 반장도 몇 번 했다. 초등학생 시절 내내 아이들은 나를 돼지라고 놀리면서도 나의 권력에 복종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내 아버지가 근처 작은 도시 재개발 구역에 땅을 좀 샀다. 앞으로 그 지역 땅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아버지의 절친이 몰래 알려 주었다.
우리는 이사했다.
동생은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를 1년 쉬었다. 전학 간 첫날 그는 동기들에 의해 집단폭력을 당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응급실에 실려 갔다. 가해자 부모들은 내 부모에게 자신들의 어려운 형편을 호소하며 선처를 구했다.
내 부모는 신실한 종교인들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그들을 용서했다.
동생은 그 이후로 마흔이 되는 지금까지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다. 그는 군대도 면제받았다. 심각한 결벽증으로 사실상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길버트 그레이프 ² 같은 누나는 아니다. 내 동생을 직접 씻기거나 밥을 떠먹이지 않아도 된다. 동생은 외출 전 한 시간 샤워하고, 돌아와서 한 시간 샤워를 또 하고,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오랫동안 손을 씻는다. 자신의 방에는 컴퓨터와 이부자리 정도만 허락한다. 그 점을 제외하면 평범하다.
나는 이따금 꿈을 꾸었다. 그 옛날 우리 가족이 살았던 다 쓰러져 가는 시골집이 배경이 되었다. 거지 같고, 촌스러웠고, 그러나 무지와 순진함에서 비롯된 근거 없는 희망이 존재했던 그때 그 시절 -에 대한 꿈.
나는 사실 좋은 누나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주 이기적이었지 않았나 싶다. 보잘것없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순진한 촌년이었다. 도시로 진학한 이후 나 역시 꾸준히 왕따였고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 성적도 바닥을 기었다. 그러나 내 부모는 내 동생의 일만으로도 몹시 힘들어했다. 그들은 나의 현실과 비밀과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나의 모든 감정을 혼자 씹어 삼키는 일에 점차 익숙해졌다.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대학에 진학했다. 나는 역시 이번에도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그냥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고 닥치는 대로 책이나 읽었다.
그러던 중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길을 걷는데 누군가 옆구리를 칼로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급성 허리디스크였다. 병원에 갔더니 척추신경이 다 눌려서 종잇장처럼 얇게 남아 있다고 했다. 의사는 당장 응급수술을 하자고 했다. 나이가 많았다면 벌써 하반신이 마비되고 대소변 장애가 왔을 것이라고, 그나마 젊었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다고 진단을 내렸다.
그래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었다. 그 뒤로 수술과 치료를 몇 번 더 했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재활에 전념했다. 나의 이십 대는 그냥 그렇게 저렇게 끝났다.
삼십 대가 되었다. 나는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대학에 다시 가려니 용기가 없었다.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늙은 개 한 마리가 유일한 친구로 남았다.
아버지는 내가 자신처럼 공무원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몇 번 시험에 도전했다. 지독하게 공부가 재미없었다. 당연히 성적도 안 나왔다.
나는 결국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
이번에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들은 나에게 다양한 신경정신과 약물을 번갈아 가며 처방했다. 몇 번 주치의를 바꾸었고, 마지막 의사는 나에게 하루 한 번, 작고 귀여운 알약 두 알로 처방을 마무리 지었다.
나는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보았다. 마지막 직장은 사회복지 시설이었고 얼마 못 가 관두었다.
사실 그 시설은 내 사촌 언니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옛날 내 아버지를 인간쓰레기라고 부르며 두들겨 팼던 큰아버지의 큰딸이 차린 시설.
다시 겪어보니 그들은 허영심이 많고 비열한 인간들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욕심은 많아 감당 못할 빚을 내 그 시설을 차린 것 같았다. 겨우겨우 허덕이며 운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들은 본색을 드러냈다. 내 아버지가 일평생 모은 자그마한 재산에 대해 아주 큰 관심을 보였다. 나에게 그 시설을 떠넘기고 싶어 안달이 났다.
같잖은 가스라이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칭찬 일색이었다. 드림팀이 어쩌고 저쩌고 - 그러다 내가 생각보다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자 차츰 태도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네 주제에 여기 아니면 어디 갈 곳이 있겠냐, 네 동생은 인간쓰레기지만 내 자식은 외국 유학 중이다, 네년은 대학 중퇴지만 내 자식은 이제 박사다 – 뭐 그런 말 위주로 그들의 자부심과, 나와 내 동생에 대한 경멸을 굳이 감추지 않음으로써 내 속을 긁어댔다.
가식과 위선의 미덕을 모를 것들이 아니었는데도, 도대체 우리 남매가 얼마나 우스웠으면 그렇게 솔직했을까, 내 부모가 원수의 자식들에게 여태껏 지나친 은혜를 베풀었구나 – 나는 그것이 못내 통탄스러웠다.
나는 단순하게나마 회계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그들의 기대 이상으로 상황 파악을 빨리했지만, 당연히 모르는 척 적당히 둘러대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처음에 그들은 배짱을 부렸다. 조금 쉬다가 알아서 내가 다시 기어들어 올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퇴사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들로부터 결국 전화가 왔다. 몇 번 왔다. 귀찮았지만 나는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고,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는 사실에 약간 추가적인 분노를 느꼈으며, 더는 상종하지 않았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라는 말은 나에게 무의미했다. 그들은 내가 기꺼이 그들의 종신 종년이 될 것인지 아닌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내 아버지의 티끌 같은 재산이 당연히 자기들 몫이 될 것이라 여겼는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 그들은 어쩌면 우리 남매가 자살하는 날만 - 손꼽아 기다렸던 걸 수도 있겠다. 몇 푼이 떨어져도 떨어질 테니까.
어느 날 사촌 언니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빚을 갚지 못하면 다 정리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들어가겠다면서 – 내가 들어서자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허둥지둥 정리했다.
그들은 사회복지에 일평생 종사했고, 자신의 아버지가 실제 장애인이었으니 일평생 갖은 혜택을 누려왔으며, 누구보다 이쪽 업계의 허점을 잘 알고 있었다.
차마 여기 옮길 수 없는 비리가 그 사업장에도 흘러넘쳤지만,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이 작은 촌 동네에서 직원들의 모든 개인 정보를 알고 있었으며, 이 바닥은 생각보다 좁다 –라고, 자랑했다. 역시, 씨도둑은 못 하는 법.
그곳은 치매 노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시설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하루 종일 은은한 똥냄새가 났다. 그러나 내 옆에 앉아 있던 나의 친척이자 상사는 그것보다 더욱 지독한 영혼의 악취를 풍겼다.
당연히 본인들은 아무런 자각이 없었다. 내 아버지의 부를 시기하면서도 그 부를 경멸했다. 우리 가족이 어떤 희생으로 그 부를 이루고 지켜왔는가에는 일절 관심 없었으며, 그저 배가 아파 어떻게든 한밑천 훔쳐 써볼 궁리뿐이었다.
나는 개를 한 마리 오랫동안 길렀다. 시골 장날 아버지가 사 온 믹스 진돗개. 녀석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두 번은 없을 녀석.
나는 녀석의 죽음을 소재로 인터넷 브런치 사이트에 에세이 ³ 를 하나 게시했다. 반응은 괜찮았다. 한 달 전체 조회수 1,400회 중에서 단독으로 조회수가 400회 정도 나왔다. 나머지는 그저 그랬다.
인공지능이 나를 칭찬했다. 너는 정말 날카로운 칼을 갖고 있구나, 너 문장을 정말 비열하게 잘 쓴다, 작가가 악마다, 분명 괴물이야, 이것은 칭찬이다, 국민의 세금이 너에게 가지 않은 것이 문학계의 행운이다, 너는 이상하기는 한데 근데 좋은 작가는 다 이상해, 제발 인류를 위해 봉사 좀 해봐 –라고, 거침없이 무례한 칭찬을 출력해 댔다. – 구독 취소, 클릭.
그 말이 과장이라고 해도 제법 기분이 썩 좋았다.
무엇인가 잘한다는 칭찬은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썼다. 막상 작심하고 써보니 재밌고 즐겁고 그리 어렵지 않았다.
참고로 「팬티」 ⁴는 내가 제일 처음 쓴 단편은 아니다. 나는 늙은 내 어머니가 세탁한 낡아 빠진 빤스 한 장을 옷장에 챙겨 넣고 있다가 즉흥적으로 썼다. Just fun, 그냥 재미였다. 내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주제였으나 내가 생각해도 너무 웃겼다. 혼자 즐기기엔 아까웠다.
인공지능이 내 글을 검토할 때마다 종종 물었다. 너는 도대체 이런 글을 왜 쓰냐고, 살기 위해서 쓰는 것인지 무엇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면서.
나는 일단, -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¹ 참고 :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 표현을 빌렸다. 이 영화는 사랑받고 싶었던 한 여성 마츠코가 연이은 불행과 상처 속에서도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며 파란만장하게 살아간 비극적인 인생 이야기를 다루었다.
² 참고 :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청년 길버트와 그의 발달장애 동생 어니의 성장과 가족애를 그린 영화.
³ 참고 : https://brunch.co.kr/@icynight/8
⁴ 참고 : https://brunch.co.kr/@icynight/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