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친구 - 나의 늙고 낡은 친구

나는 나의 오랜 친구를 그리워 하고 있다.

by 벗곰

- 나의 개는 나를 일평생 기다렸다. 녀석에게 바친다.


‘신의 뜻대로.(As God wills)’ 나는 때때로 이 말을 떠올린다. 나의 늙은 개를 생각하면서.


몇 년 전 나는 소중히 기르던 나의 늙은 개를 잃었다.


벌써 16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의 첫만남을 기억한다. 나의 아버지는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에게 개는 그저 집을 지키기 위해 한 마리 정도 기를 법한 가축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전화로 강아지를 샀다고 말했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나는 상상했다. 아름답고, 눈처럼 새하얗고, 통통하게 살찐 아주 어리고 예쁜 강아지를.


설레는 마음으로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실망스러웠다. 그것은 강아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했던 인형 같은 모습의 어린 강아지가 아니었다. 하얀색도 아니고 누런색도 아닌 그냥 개. 녀석의 털은 때에 절여 꼬질꼬질했다. 냄새도 났다. 나는 약간 실망해서 아버지에게 투덜거렸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도 저게 그중에서 제일 이뻐서 델꼬 왔다. 저래뵈도 저게 진돗개 반종이라고 5만원이나 달라고 하데. 한 푼도 안 깎아주드라.’


심지어 그 녀석은 나에게 관심도 없었다. 녀석은 개집 구석에 기대어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첫 만남은 상당히 실망스럽게 끝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곧 친해졌다. 대부분의 개들이 그러하듯이.


내 친구의 삶은 그래도 비교적 행복한 편이었다. 상당히 오래 살았고, 치매에 걸려 자신의 똥을 마당에 함부로 흘리고 다니거나 심지어 그것을 주워 먹게 되고 나서도 몇 년 더 살았다. 그 녀석은 몇 번 가출 했고, 몇 번 잃어버렸지만, 나는 기적적으로 녀석을 다시 되찾았다. 우리집 마당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녔고, 늙어서도 너무 오래 고생하지 않았다. 녀석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 태어난 수없이 많은 개들의 수없이 많은 비극적인 삶과 비교하자면, 나의 늙은 개는 상당히 행복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누군가 말하길, 사랑은 기다림이라고 하더라”. 그렇다면 녀석은 나를 한평생 사랑했다. 왜냐하면 녀석은 나를 한평생 기다렸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일평생.


개들의 사랑은 순수하지만 어리석다. 인간의 지능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없다. 만약 나의 개가 사람이었다면 누군가 말했겠지. ‘사람은 착한데, 너무 어리석어.’라고.


만약 당신이, 내가, 혹은 우리가 개를 길러본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의 사랑에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개를 길러본 사람들은 내 말뜻을 이해할 것이다. 내가 그 녀석에게 준 것보다, 녀석이 나에게 더욱 많은 것을 주었다-는 사실을.


나는 우리의 마지막 날을 우리의 첫 만남만큼이나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음력 설 바로 전날이었다.


나는 무직이었으므로 돈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소고기를 좀 샀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티는 나의 늙은 개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나는 개밥을 떠먹이고, 개가 마당에 함부로 싸 놓은 똥이 있는지 살펴보고, 개밥그릇을 씻었다. 집에 들어가려던 찰나, 나는 무심결에 뒤돌아서 녀석을 쳐다봤다.


녀석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이상한 행동이었다.


나의 개는 평소에 나와 눈을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눈을 마주치는 것은 리더에 대한 도전이다. 나의 개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녀석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뚫어지게 응시하며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내가 어떤 환청을 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들었다’가 아니다.

정확하게는 그것을 ‘알았다’.


녀석은 분명히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너를 믿어.’


나의 늙은 개는 조용히 앉은 채,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그 녀석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나의 개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당장 인터넷 무료 분양 사이트를 뒤지게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오히려 평상시 나는 개에 관한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나는 사실 개의 미덕을 칭찬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 중 상당수는 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인간의 사랑으로 인해 빚어지는 개들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개를 귀여워 하는데 익숙할 뿐이다.


언제고 한번 끔찍한 유튜브 쇼츠를 본 적이 있다. 동물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길거리의 노숙자로부터 그의 개를 빼앗아 가는 장면이었다.


그 영상에서 노숙자는 울부짖었다. 그는 울부짖고 간청하고 매달리며 애원했다. ‘그의 개’는 동물단체에서 나온 직원들의 품에 안겨서 비명을 질렀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 영상에는 나를 대신해 그들을 비난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나는 그 영상에서 인간의 오만함을 보았다. 배려와 보살핌이라는 이름의 오만한 가면을.


나의 늙고 낡고 오래된 친구는 아름다운 눈을 가졌었다. 그 녀석은 그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름다운 눈을 들여다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물론 녀석은 언제나 내 눈을 끈질기게 피했지만.


나의 친구,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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