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담곤 에세이
23년도에 상급종합병원에 실습을 나갔다. 매일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종이 한 장을 건넨다. 내 신상을 적어 놓은 네모난 종이. 그들은 항상 나에게 묻는다.
"넌 취미가 뭐니?"
취미 칸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던 나의 불찰이다. 아무거나 쓰면 됐는데, 거짓말하기 싫었다. 나를 더욱 작게 만드는 한 사람은 내 조원이다. 그는 남들이 들으면 놀랄만한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석궁이었나.
그때부터 취미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초면인 사람과 대면할 때 취미만큼 화두에 올리기 좋은 소재는 없다는 걸. 실습이 끝나고 내 '취미 찾기'는 시작됐다.
평소에 담배 태우면서 밤하늘을 즐겨 본다. 대개 밤하늘에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별이 있다. 그런 별에다가 카메라 어플을 가져다 대면 어떤 행성인지, 별인지 나에게 알려준다. 그래서 천문학에 취미를 가져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초입부터 망했다. 취미로 시작하기엔 진입장벽이 너무나 거대했다.
두 번째로 결정한 취미는 글 읽기다. 여러 언론 매체에 올라온 칼럼을 읽는 것. 이 또한 실패했다. 첫 번째 이유는 시험 기간이 아니면 매우 지루하다는 것. 두 번째는 내 견문이 좁다는 것. 당시 독서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분야의 칼럼이든 이해할 수 없었다.
세 번째 취미는 필사다. 독서하다가 인상 깊은 문장이나 문단을 똑같이 베껴 쓰는 거다. 이야기 흐름상 예상했겠지만 실패했다. 엄청 힘을 주어서 연필 잡는 습관이 있는데, 이게 내 필사를 방해했다. 또한, 남들처럼 예쁘게 글씨를 쓰지 못하는 것도 한몫했다.
나름 '취미 찾기'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건만, 남은 건 포기와 변명뿐이다.
24년에 학교를 졸업했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생이 된 시점이다. 출발선은 각자 다르지만, 누구나 죽을힘을 다해서 뛰는 건 똑같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경쟁력 있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취미 찾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서류에서 떨어질 걸 알지만 수없이 많은 서류를 썼다. 매일 떨어진다. 매일 자소서를 퇴고한다. 이 과정에서 지난날의 나를 알아간다.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점을 느꼈는지. 계속 성찰했다. 그러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솔직하게 내 감정을 털어놓는 글쓰기. 그렇게 내 잡념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매일 고된 하루를 보내고 30분 정도 독서했다. 책에서 나왔던 소재를 내 경험에 빗대어 생각하게 됐다. 이 생각은 당연히 글자로 표현된다. 초기에는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글이었지만, 나중엔 독후감부터 시작해서 서평, 견해를 담은 에세이까지 확장됐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 마무리는 항상 글짓기였다.
25년이 된 지금 직장을 가졌다. 당연히 그들은 취미에 관해서 묻는다. 2년 전과 다르게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한다.
"너는 취미가 뭐니?"
"제 취미는 '잡념의 시각화'입니다."
'뭐지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