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담곤 에세이
여느 날처럼 대학교 친구와 '색약'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이 떠올랐다. 내가 사과를 볼 때 그것이 빨간색인지 초록색인지 구분하는 것은 시각으로 식별하는 게 아니라, 사과가 가진 빨간색 이미지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여.. 쉽게 말하면 사물의 색을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떠올려 인식한다는 말이다.
색각이상자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본인의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은 소수다. 아마 당신 주변에도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 있을 것이다. 색각이상은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여기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색맹은 아예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색약은 특정 범위의 파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더 글로리'가 한반도를 뒤집어 놓으셨다. 드라마는 히트를 쳤고, 여러 가지 밈이 파생됐다. 작 중 인기 있는 등장인물인 전재준 씨는 색약을 가지고 있다. 이 소재를 이용해서 흥미롭게 드라마를 전개시킨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색약을 무슨 흑백세상에 사는 사람인 것처럼 묘사해서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왜 기분이 나빴을까?
드라마를 보고 주변 사람이 쪼르르 달려와서 내게 묻는다. "이건 무슨 색이야?" 처음엔 유쾌하게 받아들였지만,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내가 27년 살면서 저 말만 몇 번을 들었을까. 사람들은 동물원에서 관광하듯 나를 본다.
"진짜로 무슨 색으로 보여요?"
내가 색을 구분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열심히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굳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것도 아닌데 왜 찾아야 할까. 애초에 색약이 생존에 불리했으면, 진작에 도태돼서 DNA는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이 날 심각하게 보지만, 사실 난 아무 생각이 없다.
정상인은 진짜 궁금해서 무슨 색이냐고 물어볼 텐데, 이 자리에서 그에 대한 답을 드려야겠다. 내가 겪었던 몇 가지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고기 먹을 때다. 나는 선천적으로 고기를 못 굽는다. 물론 잘하고 싶기에 시도는 많이 했다. '나는 왜 고기를 못 구울까 ㅠㅠ' 생각하던 중 누나가 내게 말했다. "태현아 색약 환자는 고기 못 굽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아차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단 한 번도 고기가 익으면 색이 변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두 번째는 엄마와 차 타고 이동하던 중에 있던 경험이다. "태현아 산에 단풍이 예쁘게 폈어."라는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단일 물체가 무슨 색인지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지만, 다수 물체 중에 다른 한 가지를 뽑으라고 하면 난감하다. 야산에 모든 나무가 단풍이 아니니까, 모든 나무가 붉은색은 아니다. 초록색 바탕에 듬성듬성 단풍나무가 존재할 뿐이다. 내겐 그저 초록색 산이다.
멍 때릴 때, 술 취했을 때, 의식하지 않았을 때, 색을 보지 못한다. 학생 시설 아무 생각 없이 빨간 불에 횡단한 적도 많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24년 11월 초에 플라톤의 『 국가 』를 읽었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적인 국가가 뭔지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떤 국가와 국민이 이상적인지를. 다만, 아테네 아저씨들이 말하는 심오한 뜻은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이데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플라톤은 현실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현실과 이데아 두 세계가 존재하며, 불변의 진리인 세상이 이데아라 말한다. 영혼이 이데아에서 살다가, 육체를 얻어서 현실에 살게 된다. 어린 시절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이데아의 기억이다.
이해를 위해 몇 가지 예시를 들면 이렇다. 지구엔 다양한 나무가 있다. 색이며, 크기며, 두께며 제각기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보는 나무라도 단 번에 '나무'라고 인식할 수 있다. 그 이유가 이데아에서 살던 영혼이 이상적인 나무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아마존에만 자라나는 나무를 우리가 처음 봤을 때 나무라고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엔 다양한 형태의 책상과 의자가 있다. 대개 그런 사물은 사각형이나 원형이다. 몇 년 전에 인스타감성이라 하면서, 이상한 인테리어를 한 카페가 유행했다. 우리가 그런 카페를 처음 갔을 때, 난생처음 보는 인테리어에 당황해도, 어떤 게 의자고 책상인지 인지할 수 있다. 이건 이데아에서 살던 영혼이 가장 이상적인 책상과 의자의 형태를 봤기 때문이다.
이데아론을 읽고 생각이 많아졌다. 만약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이데아의 그림자라면,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의 색을 보지 못한다. 그림자는 검은색이다. 하지만 우리 눈엔 다양한 색이 보인다. 이때 내가 겪었던 경험을 대입했다.
내가 사과를 볼 때, 빨간색인지 초록색인지 시각을 통해서 확인하는 게 아니다. 이는 이데아 시절 내 영혼이 가장 이상적인 사과를 본 경험이 있기에 나한테 알려주는 거다. 내 눈에 사과가 초록색로 보인다고 해도, 내 뇌는 '사과는 빨간색이지'라고 내게 속삭인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실재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철학적 인지 능력이 성장했음에 만족한다.
이 글은 색각이상자이자 나의 경험을 통해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일상적으로 풀어본 것이다. 사물의 색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데아라는 철학적 개념과 만나면서 새로운 해석이 떠올랐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데아의 그림자 속에서 각자의 색을 덧입히며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