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담곤 에세이
"비행기나 기차에 앉아 특별히 무언가를 바라보지 않으면서, 그저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경험이 있는가? 어쩌면 그런 시간이 아주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난번에 바닷가나 호숫가에 앉아 있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몽상에 빠진 채, 거기서 찾아오는 느긋함을 만끽하면서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 생각에서 또 다른 생각으로 생각이 매끈하게 이동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은 내면을 향한다. 생각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모습이 꼭 밤에 꾸는 꿈과 비슷하다 해서 이를 백일몽이라 한다."
『 정리하는 뇌 』 p.76
잡념의 시각화라는 네이밍을 봤을 때, 내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항상 이상한 생각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며 지은 이름이다. 옛말로 삼천포에 빠진다는 표현이 있다. 나는 매일 삼천포에 갇혀 산다. 아무 의식 없이 느긋하게 느슨한 상태를 즐긴다. 이를 뇌과학에선 Default Network Mode라 부른다. (이하 DNM)
초기 뇌 신경 과학에선 DNM이란 말보다는 Daydreaming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어떤 하나에 주의를 집중하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드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이걸 백일몽(Daydreaming)이나 몽상(mind-wandering) 모드라 부른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지겨워지면, 우리 뇌는 의식을 낚아챈다. 예를 들어서, 몇 장째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넘기고 있다거나, 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나가야 할 출구를 놓친다거나, 시험 보다가 다른 생각이 나거나 등등.
신경 과학에선 몽상과 백일몽의 발견이 언론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업계에선 충격적인 결과였다. 몽상모드를 한 후에 우리 뇌는 편안함을 느낀다. 연구자는 이를 뇌의 휴식 상태라 정의했다. 이걸 오늘날 DNM이라 부른다. 그니까 우리가 일하다가 주의가 깨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란 소리다. 이건 뇌가 피곤해서 휴식을 취하겠다는 신호다.
"어딘가 놀러 가서 힐링하고 싶어!"를 "DNM을 활성화하고 싶어!"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아니면 자연경관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며 명상하는 것 또한 일종의 DNM이라 볼 수 있다.
갑자기 요상한 단어가 나와서 당황할 수 있지만, 별거 없다. 인간의 두뇌는 두 가지 모드밖에 없다. 몽상모드냐 중앙제어(The central executive)냐. 중앙제어 모드는 우리 뇌가 주의력을 한 곳에 집중시킬 때 활성화된다. 독서든, 운전이든, 공부든, 무엇이든.
그리고 주의력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차단하는 것이 주의 필터(Attentional filter)다. 인간의 정신적 자원을 100이라 가정했을 때, 하나에 집중하는 비용이 80이면 나머지 20은 필터에 사용된다. 주의 필터는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 의식하지 않아도 뇌가 알아서 걸러준다고 해서, 어려운 말로 인지적 맹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모드를 활성화할지 결정하는 것은 주의 네트워크(Attentional network)의 역할이다. 쉽게 말해서 스위치 역할을 한다. 이것 역시 인간의 의식으로 조정할 수 없다. 우리 뇌가 휴식하고 싶을 땐 몽상을, 무언가에 집중할 땐 중앙제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몽상은 나쁜 것인가?"
뇌과학 분야에 얕은 관심이 있기에 유튜브 관련 영상을 자주 본다. 거기서 DNM을 안 좋게 묘사하길래, 기분이 나빴다. 왜냐.. 나는 온종일 DNM을 활성화할 자신이 있다. 나는 종일 멍때리는 게 가능하다. 근데 DNM을 나쁜 것으로 취급하길래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뇌의 모드를 지배할 수 있지는 않다. 약간의 연습으로 주의력을 키울 수 있긴 하지만.
허나, 처음으로 긍정적인 내용을 봤다.
이 독특하고 특별한 뇌 상태의 특징은 이질적인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흐르고, 감각과 개념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상대적으로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 상태는 뛰어난 창의성 발휘로 이어질 수도 있고, 불가능해 보이던 문제의 해결로 이어질 수도 있다.
『 정리하는 뇌 』
사실 "정리하는 뇌"를 읽다가 잡생각이 마구마구 떠올라서 집중력이 흐려져 책을 덮었다. 지금은 백일몽 상태로 쓰고 있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