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유주

사필귀정

by 이준

진표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산 골짜기 사이에 있는 작은 몽돌 해수욕장이었다. 현지인이 아니면 찾아오기 힘든 진도의 비밀 정원 같은 곳이었다. 평일 점심.. 인적 없는 천연 수영장을 우리 둘이 독차지할 수 있었다. 넓게 깔린 자갈밭은 모래사장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앞도 뒤도 재지 않고 바닷물로 뛰어 들어간 우리는 한동안 어린 시절로 돌아간 아이들처럼 물놀이를 즐기고.. 해변으로 나와 몽돌 바닥에 등을 깔고 대자로 드러누웠다. 한낮의 태양빛에 따끈따끈하게 달궈진 몽돌이 십 년 묵은 요통까지 한방에 날려 줄 것만 같았다. 그 기분 좋은 소름 끼침에 나도 모르게 맥반석 위에 달궈진 오징어처럼 온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수영은 왜 그렇게 잘하는 거야? 완전 물개던데?" 진표가 하늘을 보고 누운 채로 내게 말했다.

"너도 만만치 않던데... 역시 바닷가 사람인 건가.." 나 역시 드러누워 짙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푸른 하늘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나야 생존 수영이고.. 넌 수영 선수 같던데. 어디서 배운 거야?"

"스무 살 때.. 고등학교 졸업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세부 가서 다이빙 자격증을 딴 거야."

"혼자 가서?" 진표가 놀라며 물었다.

"응. 혼자 가서."

"우와.. 대단한데..."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 우우.. 그냥.. 바다를 알고 싶었어.. 바다에 들어가면 고요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지상에서의 모든 잡음과 단절된 기분이야. 우리는 사람들의 다정한 말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말 때문에 죽고 싶어지기도 하잖아.. 근데 바닷속에서는 그 모든 잡소리가 들리지 않아.. 오롯이 나와 마주하는 순간... 그 고요함과 적막감이 좋아. 그리고...."

"그리고..?"

"아니야.. 그렇다고."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진표도 집요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출출하다." 반나절을 물에서 놀았더니 깊은 허기가 몰려왔다.

"고기 먹으러 갈까?"

"오..! 고기 좋지! 뭐? 삼겹살?" 입안에 군침이 돌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니 물고기. 회 먹어?"

"지금 혼자 3마리까지 쌉가능." 바닷가에 와서 회는 먹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가자. 그럼. 신세계를 보여 줄게." 진표가 호기롭게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는 진표네 아빠 친구가 하시는 횟집으로 가서 모둠 회 하나와 청하 한 병을 시켰다.

"어떻게 알았어?" 내가 물었다.

"뭐를?"

"나 청하 마시는 거."

"아.. 너 어제도 우리 슈퍼에서 청하 사 갔잖아."

"아.. 그게 어제밖에 안 됐냐.." 불현듯 어제 백사장에서 춤을 췄던 기억이 났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야.. 너 혹시.. 나 어제 춤추는 것도 봤냐?"

"어? 어..." 진표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이씨.."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에 술 한 잔을 따라 단숨에 비어버렸다.

"잘 추던데..?" 진표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술을 따라 마시며 말했다.

"못 본 거다.." 진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서울서 온 아가씨도 맛있게 드쇼잉" 식당 사장님이 모둠 회 한상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서비스로 전복 버터구이가 나왔다.

"아따메, 매번 올 쩍마다 이라면 아짐찬하게 어찟게 또 오것는가잉." 진표가 말했다.

"빨리 식사들하랑께." 사장님이 고르게 자란 건치를 내보여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가셨다.

"너 뭐야?"

"뭐가?"

"낯설어.. 뭔가.. 갑자기 엄청 어른 같아." 아빠뻘 되는 아저씨랑 사투리로.. 그것도 격도 없이 수더분하게 이야기하는 진표 모습이 왠지 나보다 훨씬 성숙한 인격체처럼 느껴졌다.

"빨리 먹어잉." 진표가 장난스레 말했다.


나무젓가락으로 참돔 한 점을 집어 고추냉이가 풀어져 잇는 간장에 살짝만 담갔다가 그대로 입안에 쏙 넣었다. 고소하고 싱싱하다... 날 생선인데 들기름에 볶은 땅콩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뭐지..' 사장님을 한번 쓱 쳐다봤다. '도대체 여기에 뭘 넣으신 건가요...' 사장님은 여전히 건치 미소만을 날릴 뿐이다.

바닷가에서 먹는 회는 확실히 다르다. 다시 한 점을 집어 이번에는 초고추장에 살짝 담갔다가 그대로 입안에 넣었다. 생선회 고유의 그 느끼하고 약간은 비릿한 맛이 알싸한 초고추장과 만나며 그 자취를 완벽하게 감춰버렸다. 확실히 나는 초고추장파다. 아무리 육지 촌놈이라고 놀려대도 좋은 건 좋은 거다. 초고추장을 이길 수는 없다. 두툼하고 고소한 식감의 회 한 점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전에.. 급하게 청하 한 잔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캬.." 또다시 극락행이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이 되어 가는데 인생이 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마저 든다. 술기운이 달아오른다. 순간 약 3초 정도.. '진도로 이사 올까.'고민해 본다.

몸에서는 빨리 막장에 찍은 광어 한 점을 더 넣어달라고 아우성이다. 허기진 배에 회가 들어가는 속도가 올라가는 만큼 술도 쭉쭉 넘어간다. 어쩐지.. 파도 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갈매기 우는소리는 점점 더 애달파진다.


"아빠가.. 아빠가 사라졌어." 배가 불러오고 술기운이 올라오자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뜬금없이 내 입에서 아빠 얘기가 튀어나왔다.

"응..?" 아무런 저항 없이 식사를 하던 진표가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내가 여섯 살 때... 아빠가 갑자기 사라지셨어. 금방 오신다고 했는데 돌아오지 않은 거지..." 술잔에 술 한 잔을 넘치도록 따르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삼촌, 청하 한 병 가져갈게요." 비어있는 술병을 보고 진표가 얼른 가서 청하 한 병을 더 가지고 왔다.

"우리 아빠는... 젊었을 때 꽤 잘 나가는 사진작가셨어. 제법 규모가 큰 전시관에서 개인전도 열고 하셨나 봐.. 그래서 항상 해외로.. 지방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셨어. 사계절의 모습을.. 찰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신 거지.."

"멋지다..."

"연애할 때는 엄마도 같이 다니셨다고 하는데.. 내가 태어나고 나서는 엄마가 육아를 하느라 같이 못 다닌 거야.. 그래서 어느서부턴가 아빠는 때가 되면 홀로 지방 곳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신 거야.. 그렇게 잘 다니셨는데.." 진표가 내 빈 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내가 6살 때.. 여수 바다로 사진을 찍으러 가신다고 하고 집을 나가셨는데... 그날로 영영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행방불명되신 거지... 허탈했어... 그리고 너무 원망스러웠어... 모든 게 다.. 아빠는.. 엄마와는 다른.. 내 인생에 거대한 세계관이었어. 어릴 때라고는 하지만.. 자세한 추억들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나한테 주었던 그 사랑과 다정함 만큼은 선명해..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한 거야.."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그대로 볼을 타고 내려와 입술에 맺혔다.

"우리 아빤 나한테 다 줬어.. 아니.. 다 줬을 거야.. 날 정말 많이 아꼈어. 그런데 그런 아빠를 데려가 버린 세상이... 하늘이... 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어." 진표가 말없이 티슈 몇 장을 뽑아 내게 건네주었다.

"아빠가 사라지고 6개월 만에 경찰은 영구미제 사건으로 종결지은 거야. 여수 바다로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했으니까 실족사했을 거라고 추정한 거지. 왜냐면 그 외에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돈 문제도 없었고 가정적 불화도, 건강상 문제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사라진 거야. 그건 사고밖에 없는 거지. 천재지변 같은.." 진표가 준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고 감정을 추스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결국 우리는 아빠가 사라지고 1년 만에 아빠 없는 장례식을 치렀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야. 엄마는 나에게 그저 아빠가 먼 곳으로 떠났다고만 말했어... 돌아오기 아주 어려운 곳으로. 그때는 죽음이란 것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나중에는... 내가 태어난 게 잘못인 건가 싶더라.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도 같이 갔을 거고.. 그러면 그렇게 까지는 안 됐을 거 아냐..."

"유주야.. 그건 과도한 비약이야.. 아빠도 네가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진 않으셨을 거야.."

"밉더라고... 아빠가 원한 이별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너무 미웠어. 아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냥 더 미웠어..." 결국 주체할 수 없는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래서 배운 거야... 진짜로 아빠가 바다에서 실족사한 게 맞다면... 내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어. 그곳에서는 아빠를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까.. 바닷속이라면 아빠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기억날 수 있을까 싶어서... 근데도.. 아직 여수를 못 가... 아직 자신이 없어.. 지금도 어느 날 아빠가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우리 딸!' 하면서 집에 들어올 것만 같아.. 그래서.. 우리 엄마도 나도 지금까지 이사를 못 가.. 서울이 그렇게 싫은데도.. 이사를 못 가.. 아빠가 혹시라도 찾아왔다가 우리를 못 찾을까 봐..." 말을 마치고 술 한 잔을 비웠다. 가슴에서는 응어리인지 뭔지 마치 암세포 같은 뜨거운 무언가가 몽글몽글 만져지는 것만 같았다.


"너는?"

"응..?"

"너는 왜 갑자기 경찰이 되려고 하는 건데?" 식탁에는 눈물 젖은 휴지 한 뭉텅이가 놓여있었다.

"나..? 나는 원래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 돈 많이 벌어서 우리 할머니랑 부모님이랑 좋은 거 사드리고.. 좋은 곳 여행 시켜 드리고.. 그래서 전공도 경영으로 간 건데.. 공부하다 보니까.. 경영이라는 것도, 돈 버는 것도.. 욕심 하나만으로는 어려운 것 같더라고.. 그래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어려운 사람들 도우면서 사는 게 뭔가 보람된 삶일 것 같아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뭘까..'생각하다가 경찰을 선택한 거지... 근데 할머니가 진도에 계시니까.. 해양경찰을 생각하게 된 거고... 너는..? 그러는 너는 꿈이 뭔데..?" 진표가 말을 마치고 내게 물었다.

"난 글쟁이... 글 쓰는 걸로 먹고살고 싶어서 문창과에 들어갔어... 올해 졸업반이라 졸업작품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욕심이 많아서인지.. 뭔지... 소설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기승전결이 있고.. 이야기에 흐름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 근데.. 세상은 그런 흐름으로만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 사필귀정... 모든 일은 결국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걸 모르겠어. 그렇다고 하기에 세상은 너무 엉망진창. 모순 덩어리야.. 그러기에는 못된 놈들이 너무 잘 살고.. 착한 사람들은 고통받아. 이런 상황에서... 나도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쓸 자신이 없었어..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을.. 마치 이해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척.. 아는 척.. 써 내려갈 자신이 없더라고... 우리 아빠도 좋은 아빠였어. 만약에 정말 세상이 결국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면 우리 아빠가 그렇게 돼서는 안 되는 거 아냐? 우리 아빠는 우리 가족밖에 모르는 착한 사람이었는데.. 세상이 우리 아빠 같은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렇지..."

"그래서 휴학했어... 도무지 자신이 없더라고. 그리고 머리가 너무 아파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단순해 보이는 일을 찾은 건데.. 그게 편의점 알바였어. 근데 쌰갈.. 그것도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더라.. 후 우우..."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일은.. 진짜 올라가는 거야?"

"가야지... 우리 엄마가 내색은 안 해도 내 걱정 엄청 해. 내가 우리 엄마의 전부야.. 내가 이래 봐도 귀하게 자란 몸이야 인마."

"누가.. 뭐라냐.. 진도는...? 진도는 또 안 와..?"

"왜? 또 오면 놀아줄게?"

"당연하지. 올해 시험만 붙으면..."

"그래.. 너 시험 붙으면 축하주 한잔하러 또 오지 뭐."

"내일.. 데려다줄까..?"

"아냐 됐어. 내일은 아침 일찍 조용히 떠나고 싶어.." 우리는 마지막 잔을 부딪히고 기약 없는 만남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밤바다 위에는 반딧불이 같은 오징어 배들이 점점이 떠다니고 있었다.


진표 이야기를 듣고 와서인지 안락하게 느껴졌던 숙소가 왠지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아이씨.. 목을 어디서 맨 건지 안 물어봤네..'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샤워를 하고 침실에 누웠다. 오후 9시.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진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대로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제 읽다 만 방명록이 생각났다.

'그래.. 그 할아버지도 불쌍한 사람이지..' 방명록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내 안에 엄습해 오는 이 정체 모를 불안감에게 어떤 적당한 명분이라도 쥐여줘야만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방명록 속에 내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낼 황금열쇠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불을 걷어 재끼고 1층 공용 거실로 내려갔다.


어쩐지 묵직한 공기마저 내려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마치 해야 할 일을 끝마쳐야 하는 사람처럼.. 어제 읽다 만 방명록을 가지고 거실 중앙 책상에 앉았다.

'또 어떤 사연이 있을까...'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조용히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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