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삶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너도 이제는
결혼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그 말에
나는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나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사실은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삶’
보다는,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
을 살고 싶었다는 걸.
결혼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참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모두에게 필요한 방식일까?
누군가와의 삶보다
나자신과의 삶이 더
중요한 사람도 있다.
지금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물어본다.
“혹시 누군가에게 크게 데인 거야?”
“결혼이 두려운 이유라도 있어?”
그런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하지만,
결국 이렇게 말하게 된다.
“아니.
그냥, 혼지 있는게 편해.
내가 나를 감당하기도 벅찬데
결혼은 무슨.”
대중적인 이유는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솔직한 이유를 말 하면,
의례 비혼 결정하는 사람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힘들게 살았어도,
결혼 잘 하는 사람도 많다.)
어려웠던 가정환경이
나에게 '결혼은 지옥' 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어서 였다.
과거는 여전히 발목을 잡아,
불혹의 나이에도 나를
물귀신 마냥 잡아 당긴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단어 앞에
나는 자주 움츠러들었고,
때론 애써 웃으며 넘겼다.
“언젠간 하겠지 뭐.”
“아직 좋은 사람이 안 나타나서 그래.”
이런 식으로,
나조차도 내 선택을
장난처럼 가볍게 말해버리곤 했다.
왜 일까.
그러지 않으면
너무 진지해지는 것 같았고,
그럼 더 많은 질문들이 따라올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걸.
어린 시절의 상처에 눌리지 않고,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도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혼자라는 삶이
잘못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타인의 기준으로 나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삶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정말 나를 사랑 해 주고,
내 상처를 이해 해 줄 사람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결혼이 필요 없는 하루들로
이미 충분히 채워지고 있다.
사랑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알고 있고.
결혼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대 없이도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래도 결국은 다들 가더라."
그 말도 맞다.
어쩌면 나도,
정말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나타난다면
생각이나 가치관이 또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다들 시집,장가 간다고 해서.
나도 급하게 떠밀리듯 결혼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내 삶 안에서
나를 돌보고,
나를 단단히 세워가며,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아니, 훨씬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증명해보려 한다.
그리고 만약,
어느 날 누군가와
서로의 삶을 나누고 싶어질 때가 오면,
그건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정말 '함께하고 싶어서'여야 한다.
'결혼 하는 것'
혹은
'가정을 이루는 것'
이
최종 목적지가 되어선
안된다는 말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이 삶이
내가 직접 고른 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자유,
내가 감당한 외로움,
내가 키운 자존감으로
나는 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나 자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결혼이 선택인만큼,
혼자인 삶도 선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