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노후를 맞이하기에 제일 좋은 친구는 '돈'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삶의 무게를 나누는 일일 테고,
혼자 살아간다는 건
그 무게를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곧 나에게
경제적인 자립에 대한 각성을 던졌다.
조금 슬픈 이야기일 수 있지만,
홀로 노후를 맞이하기에
제일 좋은 친구는
'돈'이다.
한 친구에게 내가 물은 적이 있다.
"결혼하면 좋은 점이 뭐야?"
잠시 망설이던 친구가 말했다.
"혼자 버는 것보다,
둘이 벌어서 모으는 게 빠르니까."
물론
다른 뜻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내 귀엔,
돈을 혼자 모으기 힘드니
둘이서 같이 모으기 위해서
결혼한다는 뜻처럼 들렸다.
생각했다.
혼자, 두 명이 버는 것만큼
벌면 되는 일 아닌가.
하고.
'혼자 외로우면 어쩌지.'
보다
'돈이 없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조금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처음엔 아껴 쓰려고 노력해 보았다.
혼자 살려면 적게 써야지.
덜 써야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했었고,
나는 그대로 실천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나는 모으는 삶보다,
버는 삶을 택하고 싶었다는 걸.
줄이는 삶보다
확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걸.
돈 아끼느라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지 못했고.
돈 때문에
놀러 가서도 전전긍긍하며,
신나게 놀 생각도 못했고.
그 모든 걸 겪으면서
악착같이 모아봤자,
모으는 게 즐겁다기보다
되려 삶의 질이 굉장히 떨어지는 것 같아
꽤 큰 비참함을 느껴야 했다.
아마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게 '나'라는 사람의 성향인걸 어쩌랴.
내가 선택한 ‘혼자’라는 삶은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삶이고,
그만큼 누구보다 더
강해져야 하는 삶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들이
언제부턴가
‘내가 평생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바뀌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수입 구조를 더 다양하게 만들고,
경험의 밀도를 높이고,
내 이름으로 서 있는 이 시간들을
하루하루 늘려가기 시작했다.
늦다면 늦고,
빠르다면 빠른.
내 나이 서른 살 때의 이야기다.
혼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정서적인 결핍보다
경제적 불안정이
혼자의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더불어 살고 있는
지금 이 현실 속에서
뼈저리게 체감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
더 많이 벌기로 했다.
경제적 독립은
혼자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최소 조건이다.
누구의 기준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 방식대로 살기 위해서는
‘벌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인생 계획에 맞춰
내 삶을 조정하지 않는다.
더 많이 벌고,
더 넓게 보고,
더 자유롭게 결정하기 위해
내 시간을 쓰고 있다.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만의 수입을 설계하는
감각과 의지력이다.
그 감각이 없으면
결국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살 수 있고,
그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혼자 있어도 진짜 자유롭지 못한다.
아-
나는 평생 혼자 살아야 될 팔자인가 보다.
싶었던, 그 언젠가.
'그러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지금 나는 뭘 준비하고 있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감정보다 먼저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고,
불안보다 먼저
수입을 설계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나 스스로가
요즘은 꽤 든든하다.
내 삶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내 선택으로 채워가고 있다는 사실이.
혼자라는 이유로
움츠러들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지금보다도 더
강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이 순간에도 나의
가장 확실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