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삭
우리 가족은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또 좋아한다고 믿는다.
너는 연구원이 어울린다며
대학원도 잘 갈 거라고,
뭐든 공부하면 된다고 말하지.
하지만 엄마,
난 공부가 적성이라서 하는 게 아니야.
좋아해서 붙드는 것도 아니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 하나뿐이라서야.
운동도 서툴고
눈에 띄는 재능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믿을 건 오래 앉아 버티는 힘,
엉덩이 힘뿐이었지.
그래서 책을 잡았어.
유일하게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게 공부였으니까.
나는 잘해서 하는 게 아니야.
할 수 있는 게
이거 하나라고 믿었기 때문에
계속해온 거야.
이것만큼은 날 배신하지 않기를 바라.
공부마저 날 떠나버린다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