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강아지 똥 마려운 것처럼 왜 그러나’는 말이 있다.
누군가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개를 길러본 적도 없고, 강아지가 똥 싸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 나는
이 표현이 쓰일 때마다 궁금했다.
도대체 왜 강아지 똥 마려운 걸로 비유할까?
엊그제,
딸이 출장을 가면서 슈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딸 집에 와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슈의 행동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슈는 대체로 얌전한 아이였다.
현관의 중문 앞에 조용히 앉아서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슈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현관문 앞으로 갔다가,
거실로 달려오듯 왔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가,
또다시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을 왕복하던 슈가
갑자기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는
맴맴돌이를 하며 ‘낑낑’ 소리를 냈다.
나는 놀라서 외쳤다.
“슈, 왜 그래? 어디가 아파? 왜 이렇게 안절부절이야?”
그런데 그 순간, 슈는 딱 멈춰 서더니
조용히 바짝 쪼그리고 앉아
동글동글한 똥을 한 뭉텅이 싸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강아지 똥 마려운 듯’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강아지들은 왜 똥을 싸기 전에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거리나?
알고 보니,
배변이라는 무방비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이 안전한지,
적이 없는지,
나를 지켜주는 사람(주인)이 근처에 있는지를
점검하는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불안해서가 아니라
안전을 확인하려는 자연스러운 본능.
그게 바로 그 맴맴돌이의 정체였다.
인간도 그렇다.
우리가 불안에 사로잡힐 때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해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지금 나는 안전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안하다는 것은
우리가 상황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는 신호이고,
조금 더 들여다보라는 마음의 알람이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불안은 적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는 작은 ‘경비견’이다
불안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라는
내면의 신호다.
강아지가 똥을 싸기 전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자꾸 멈춰 서는 이유도 같다.
자신이 안전한지
지금이 괜찮은 순간인지
확인하려는 본능적인 탐색.
그러니 사람도 불안할 때
자기 자신을 이렇게 바라보면 된다.
“내가 정확히 모르는 건 무엇이지?”
“지금 이 감정은 무엇을 알려주려 하지?”
“내가 두려워하는 건 사실 뭔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불안은 더 이상 나를 휘두르는 괴물이 아니라
상황을 더 선명히 보게 돕는 작은 경비견이 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정확히 들여다보는 순간
불필요한 상상과 걱정은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마치 똥을 싸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듯.
불필요한 감정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 마음에도 숨 쉴 공간이 생긴다.
불안을 잘 다루는 일은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일단 감정은 인정한 후,
실제 상황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나에게 맞는 행동을 선택할
여유를 되찾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어쩔 줄 몰라하며
맴맴돌이를 반복할 때가 있다.
그러나 조금만 멈춰 서면
그 순간조차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게하는
정확하고 다정한 신호가 된다는 것임을
알게될 것이다.
상큼 발랄 해피마망의 인생철학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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