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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탈출 망치가 필요해

2분 동안 제발 제가 파는 망치 얘기 좀 들어주세요.

by 끌로드

('쾅'하는 커다란 망치질 소리가 한 번 울리며 광고가 켜진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그런 상품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오래 기다리신 그 제품. 바로 '비상 탈출 망치'입니다. 허어... 상품명만 듣고 후회하시면 안 됩니다. 이 제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기 저 멀리 스틱스강 어디 지류에 사는 라운 박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상품입니다. 박사는 강을 건너기에는 아직 이른 사람들을 위해 망치를 개발했습니다. 박사가 만든 게 뭐가 대단하냐고요? 어어...! 아직 채널 돌리지 말고 일단 2분만 제 얘기에 귀 기울여 주셔봐요. 절대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일단 망치의 외관부터 찬찬히 뜯어 살펴보자고요. 겉면은 일반적인 비상 탈출 망치처럼 단단한 내구도를 자랑하면서도 다양한 색도 낼 수 있게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상과 접촉할 면은 금속물질로 이루어져 있죠. 다만 이 제품은 특이하게 대상의 상태를 분석하고 망치를 내려쳐야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게 망치에 모니터가 달려있습니다. 심지어 얼마나 큰 힘으로 내려쳐야 할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오라...? 당신 꽤나 구미가 당기는 표정을 짓고 있군요. 자자 아직 이 망치의 매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관은 이쯤이면 된 것 같고, 성능에 대해서 어디 한번 말해볼까요? 일단 비상 탈출 망치란 명칭에 맞게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을 잘 빠져나올 수 있는 '기능'이 제일 중요하겠죠? 그런 면에서 이 제품... 절대 놓치시면 안 됩니다. 당신이 생과 사의 가느다란 실에서 아찔한 줄타기를 하고 있을 때 아리아드네의 실이 되어 삶으로 이끌어줄 단 하나의 제품입니다. 이 망치는 전기를 이용하며, 당신의 상태를 분석해 그에 걸맞는 에너지를 부여합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보통은 내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망치를 휘둘러서 상황을 타개하는데 이 제품은 대상이 내가 됩니다. 나에게 직접 망치를 휘둘러 전기 에너지를 주는 것이죠. 전기 에너지를 받은 당신은 다시 한번 두근대는 심장을 가지고 비상에서 일상으로의 회귀를 꿈꿀 수 있게 됩니다. 어때요 말만 들어도 참 매력적인 아이 아닌가요? 구매 의지가 생기셨다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때마침 약속한 2분이 다 되어가거든요. 어허 넣어두세요. 비용은 이미 선불로 계산됐습니다. 누가 계산했는지는 우리 일어나서 확인합시다. 자 그럼 두 번째 망치질하겠습니다. 부디 이번에는 망치 소리가 아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쾅'하는 커다란 망치질 소리가 한 번 울리며 광고가 꺼진다...... 적막...... 그리고 '두-근, 두-근')

비상 탈출 망치 마침.



세계대전을 겪으며 평화로운 일상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죽음의 현실, 공포, 불안에서 존재와 망각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얻은 하이데거가 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방송으로 CPCR code(심정지사태로 급히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코드를 말함)가 울리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어느 한 구석에서 사람을 살리는 전쟁이 시작됐구나 생각하게 된다. 다만 하이데거가 겪은 전쟁과는 다르게 매번 삶의 고개를 넘는 환자들과 그 환자를 삶의 뭍으로 꺼내오려는 의료진에게는 일상적인 전쟁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인간이 가진 무기 중 하나인 '이성'으로 인해 최악의 전쟁이 벌어진 것과 달리 '이성'으로 환자를 살리는 전쟁은 아무렴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간호사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직업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CPR은 존재에 대한 가장 실존적인 전투라고 생각한다.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CPR, 심폐소생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심장을 대신해 외부에서 일을 해주는 것이다. 심장은 전기 신호로 작동을 하는데 모종의 이유로 전기 신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심장 리듬을 보인다. 그중 심실세동이나 무맥성 심실빈맥일 때는 흉부압박에 더해 제세동을 해야 하는 매우 위급한 심장리듬이다. 제멋대로 뛰는 심장에 일순간 강한 전기충격을 주어 전기신호를 정상적으로 돌리는 것이 제세동이다. 제세동시행한 후 2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다시 리듬분석을 하는데 마찬가지로 전기충격을 해야 되는 심장 리듬이면 다시 제세동을 한다. '2분'의 과정을 환자가 소생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하는 게 CPR이다. 글에서 말한 비상 탈출 망치는 제세동기 대한 설명이었다. 2분의 시간 동안 환자가 소생하길 간절히 바라며 끊임없이 환자에게 말을 건다. 그 말은 흉부압박이 될 수도 있고, 인공호흡이 될 수도 있고, 약물 주입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언어에는 제세동도 포함된다. 우리 언어로 환자를 질척거리고 끈적하게 잡아낸다. 그 과정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의 체력이 고갈되는 순간이다. CPR의 결과와 상관없이 CPR에 참여한 의료진은 마치 자기 생명력을 나눠 환자에게 들이부은 것처럼 모든 기력을 소진한다. 다만 환자가 ROSC(자발순환회복)를 한다면 굉장한 보람을 느끼기는 하지만 보람과 별개로 너무나도 급박한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피로감과 불안은 의료진을 지치게 하기 충분하다. 처음 CPR을 겪는 신규선생님들은 동공이 축소된 상태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많다. 당연하다. 얼마나 무섭고 두렵겠나. 죽음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고 무겁게 아래로 추락시킬 것이다. 다만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는데 그 감정이 하이데거가 경험한 존재의 철학이지 않을까? 그 과정을 묵묵히 지내온 선생님들은 죽음을 담담히 마주할 수 있는 미련한 '초인'이된다. 당연히 그들에게도 어떠한 '비상 탈출 망치'가 필요하겠지. 각자가 가슴 내밀한 곳에 비상 탈출 망치 하나씩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오면 마음껏 휘두르고 편안해지길 바란다.

당신에게 비상 탈출 망치는 어떤 건가?

('쾅'하는 커다란 망치질 소리가 한 번 울리며 광고가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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