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겨울꽃 02화

소낙비

by 류하온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평소라면 느긋한 걸음으로 주변을 돌아보았을 텐데. 소낙비 때문에 다 글러먹었다. 잔뜻 멋 부린다고 신은 구두 때문에 발꿈치와 발가락에 핏물이 배어 나왔다. 따가움도 느낄 새가 없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저 백구 뒤에는 개조심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보기에는 순박하고 귀여운 저 백구를 조심하라니.

내가 지나갈 때마다 왕왕 짖어대는 거 보면 성질머리가 보통인 아닌 것 같긴 했다. 봐, 지금도 저 백구는 비를 맞으면서 왕왕 짖어대고 있다. 백구가 있는 집을 지나쳐서 걸어가면, 한참 동안 논과 밭이 가득한 길을 걸어야 한다. 다행히 소낙비가 내려서 작은 벌레 무리들을 마주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구질구질하게 젖은 초라한 내 몰골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교회를 지나가면 촘촘하게 짜인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물에 빠진 물귀신처럼 돌아다니는 것이 퍽 부끄러웠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느릿해진 걸음으로 집으로 걸어간다. 마음은 벌써 현관문을 열고 이 불편한 구두를 벗어던졌다.


소낙비가 그쳤다. 거세게 내리던 비는 언제 내렸냐는 듯이 멈췄다.

물이 마른 도랑길을 걸어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숨겨져 있는 우리 집이 눈에 보인다. 목줄 없이 키우는 강아지들이 가끔씩 나를 반길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서 걸어 올라간다. 고작 20분 거리의 집으로 가는 길이 험난해졌다. 소낙비가 내렸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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