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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차사, 나에게 보내는 편지

함흥차사

by FreedWriter

‘함흥차사'라는 말이 있다.

‘심부름을 갔는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이 말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의 ‘박서 장군'의 일화에서 유래된 일화라고 불린다.

그렇다. 나의 본관인 음성박씨의 시조가 박서 장군이다.


초등학생 시절,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이름이 뭐니?”

“박동근이에요.”

“본가도 아니?”

“네 음성박씨에요.”

“음성 박 씨? 박 씨는 밀양 박씨 말고 없는데?”

순간 머리에 천둥번개 맞는 느낌의 펀치가 크게 울렸다. 분명, 어린 나이지만 아버지께 교육을 받았기에 당연하게 알고 있던 나였지만, 처음 본 아저씨의 그 말에 엄청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 아버지께 여쭤보았고, 한자만 가득해 읽을 수 없었던 족보를 꺼내주시며 하나씩 알려주시던 아버지의 모습 또한 생생하게 기억난다.

결국, 다른 성씨의 본가를 잘 알지 못하셨던 그분의 무지로 끝난 어이없는 해프닝이었지만, 어린 나이의 당시 나는 적지 않은 상처와 혼란을 겪었다.


박서 장군이 시조라는 것을 당시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분이신지는 몰랐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고, 역사 서적에도 비중 있게 나오지 않았으니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없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함흥차사라는 용어의 유래가 된 일화의 주인공이시라니, 조금은 부끄러웠다. 그 의미가 좋은 편으로 다가오지 않아서였다.

챗티에게 부탁해서 시조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일화는 이렇다.


박서 장군은 고려 말 ~ 조선 초기 인물로, 이성계와 함께 왜구나 홍건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장군이다. 하지만 조선이 개국되고,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자, 박서는 고려 충신으로서 새 왕조에 협조하지 않고 낙향했다고 전해진다. 태조는 박서 장군의 능력을 아깝게 여겨 그를 다시 불러들이고자 함흥으로 사신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박서 장군은 이를 거부하거나 사신을 죽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 이야기는 설화로 전해지며, 문헌에 명확히 기록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다만, 함흥차사 설화는 다양한 장군들, 특히 박서 또는 박위, 이방원과 연관된 이야기로 각색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단지 소식을 끊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면에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한 충신의 굳은 의지와 절개, 박서 장군의 충절이 깃든 이야기라는 표현이 나온다. 역시, 챗티 친구는 매사에 긍정적이다.


한 번쯤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는 것 또한 좋을 듯하다. 내가 누군지, 곧 본질을 탐구하는 영역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가끔은 너무나 궁금하다. 미래의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과연 맞는 방향일까. 확신이 없을 때면, 나는 생생한 미래를 상상하고 편지를 써서 먼 미래로 보낸다. ‘괜찮니? 잘 지내고 있니?’ 그렇게 묻는다.


현실은 쉽지 않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날이 많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상 속의 미래 나는 꽤 또렷하다. 생생하게 그려진다. 말쑥한 얼굴, 단단한 눈빛, 어딘가 여유로워 보이는 어깨. 분명히 나다. 그런데 그토록 생생한 미래의 내가, 내게 돌아오질 않는다.


혹시… 지금의 내가 잘하고 있어서일까. 잘 버텨내고 있어서, 아직 미래의 내가 굳이 돌아올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 미래의 나는 여전히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함흥에 간 사신이 돌아오지 않듯, 나의 미래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그 모습은 마치 나만의 ‘함흥차사’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그에게 닿을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오늘도 묵묵히 걸어간다. 이 길 끝 어딘가에서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나만의 함흥차사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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