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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같은 육아

by FreedWriter

폭우처럼 무너진다. 평소 규칙적인 일상은 온데간데없고, 아이들의 웃음과 소리, 끝없는 질문과 요구가 하루 종일 쏟아진다. 초등학교 1학년 딸과 7살 아들. 연년생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둘은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좋은 쪽으로든, 피곤한 쪽으로든.

아내는 지방에서 근무 중이라 처음 맞는 방학은 온전히 내가 전담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주를 버텨야 한다니, 처음엔 ‘폭우 속 우산 하나 든 사람’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아빠 오늘 뭐 해?”라는 첫 질문이 번개처럼 떨어지고, 그 뒤로는 끝없는 소낙비처럼 크고 작은 요구들이 이어졌다. 밥 먹여야지, 설거지해야지, 집안 치워야지, 또 놀아줘야지.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럴 바엔 진짜 폭우를 맞으러 가자.

“오늘, 오전 수업만 마치고 아빠랑 놀러 가자!”

“진짜? 어디로?


“비밀이야!”

그렇게 무작정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서울 근교 바닷가로 향했다. 숙소를 예약한 것도 아니고, 여행 계획표도 없었다. 오히려 그 즉흥성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차창 밖 풍경이 아파트 숲에서 바다 냄새로 바뀌어 갈수록, 마음 한편이 조금씩 개이는 기분이었지만,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 안전벨트라는 끈 하나에 의지한 채 자동차의 미세한 진동은 수면제를 복용한 마냥 바로 꿈나라로 향하는 아이들.

아빠 혼자 운전해서 멀리 가는 것은 지옥의 문을 내가 열고 들어가는 것과 같기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제부도로 향했다. 바닷길이 열리는 신비한 길. 하지만, 여니와 라미는 꿈나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섬에 다다를 때쯤, 잠에서 깬 여니가 먼저 소리친다.

“우와! 바다가! 하늘에 뭐가 떠있어서 날아다녀~”

그렇다. 제부도와 전곡항을 이어주는 케이블카를 가리켜 타고 싶다는 희망에 찬 절규였다. 이 절규에 곤히 잠들어 있던 라미도 깼다.

“흐아~ 잘 잤다!”, “케이블카 타고 싶어!”

바로 케이블카로 향해 왕복 코스에 바닥이 보이는 좀 더 비싼 케이블카를 구매한 뒤 왕복 코스로 다녀왔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모래사장으로 달려갔다. 딸은 모래성을 쌓으며 모래 위에 잔잔한 강을 만들었고, 아들은 그 강을 순식간에 파도 속으로 흘려보냈다. 이내 성도, 강도, 모래로 만든 모든 것이 파도 한 번에 허물어졌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시 만들면 되지!” 하며 웃고 또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물놀이가 시작되자 장면은 더 유쾌해졌다. 아들은 두 손으로 바닷물을 퍼서 내 얼굴에 ‘물 폭탄’을 던졌고, 딸은 나와 파도 사이에 서서 “아빠, 내가 막아줄게!” 하며 방파제 흉내를 냈다. 물론 파도도, 웃음도, 모두 우리를 가볍게 삼켰다. 옷은 이미 절반 이상 젖었고, 모래는 발가락 사이로 끼어 있었지만, 그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처럼, 마음이 자유로웠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해수욕장은 시원한 바람과 햇살로 우리를 맞이했다.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마음속에 번개처럼 반짝이는 기억이 남았다. 폭우 같은 방학 속에서도, 그 한가운데서 웃을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폭우가 아니라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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