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집념 14화

재해석

by 로지

잘 못 봤겠지 하며 비가 내리는 차창의 와이퍼를 빠르게 작동시켰다.

그 여자가 길 한복판에 비를 맞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확하게 내 차를 가로막고 서 있다.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는 그 여자를 지나쳐야 하는지

내려서 그 여자를 확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맞닥뜨린 그 낯선 동네에서 그 여자를 만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잠시 멈춘 지금.

판단은 내 몫이다.

그 순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그 여자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미 얼어붙은 내 오른발은 페달을 밟기엔 늦어버렸다.


놀란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자동차 문이 열리지 않도록 잠금 버튼을 반복해 눌렀다.

운전석 문을 열어보려 시도한 그 여자는 빗줄기가 굵어진 비를 그대로 맞으며 차문을 거칠게 두드린다.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며 그저 달렸다.


공포 어린 팽창력이 폭발할 듯 심장박동이 요동친다.

사람을 잘 못 본 걸까?

제대로 봤다면 그 여자는 왜 그 길에 나타난 걸까?

정처 없이 마음이 이끄는 데로만 달려간 그곳에 그 여자가 있을 순 없다.

우진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그대로 빛보다 빠르게 라는 말이 절묘할 만큼의 속력으로 내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멀미가 난 듯 뒤틀리는 메스꺼움을 부여잡고 소파에 엎드렸다.

손에서 떨어질세라 힘주어 잡고 있는 핸드폰으로 다시 한번 우진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 안 그래도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있어서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


"그 여자 유지은!! 그 여자가 자꾸 날 따라다녀!"

답답함과 무서움이 동시에 서려온다.

소리치듯 그에게 말했지만

태연하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우진 씨가 너무 원망스럽다.


"무슨 소리야. 또 어디에서 봤다는 거야? 다쳤어? 또 행패를 부렸어?"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아니, 맞아 행패를 부린 거랑 똑같지! 몰라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에 도착했는데 거기 서 있었어. 나도 모르는 곳이라 어디라고 설명할 수 없어..! 적어도 우리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동네일 텐데. 그런 곳에 그 여자가 내 차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어딜 간 건데? 어느 길에서 어떻게 만났다는 거야?"


"모른다고! 몰라! 어딘지 짐작도 안가... 그냥 운전해서 마구 갔을 뿐이야. 꽤 달리기만 해서 알 수가 없어.

의정부 방향인가? 아마 그쪽이었던 거 같은데 그냥 이정표도 잘 읽지 않았고... 시골길 같은 한적한 동네야

그거밖엔 몰라. 돌아올 때도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왔어.."

횡설수설하는 중에 나름대로는 꽤나 분명하게 힘주어 대답해도 그는 알아듣지 못한다.


"지원아. 천천히 말해. 무슨 말인지 도대체가. 혹시 잘 못 본 게 아닐까?

네 말대로 어떻게 그게 가능하니?"


"우진 씨! 나 지금 너무 무섭고 떨려. 정말이야. 확인할 수 있잖아.

내 블랙박스라도 열어본다면 그래! 블랙박스! 거기 다 찍혔을 거야!"

유레카를 외치듯 큰 소리를 내며 소파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차분해졌다. 뇌회로가 돌아간다.

블랙박스에 찍혔을 모든 상황을 같이 확인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우진 씨 지금 집으로 와 줘. 너무 무서워서 나 혼자선 도저히 다시 나가서 볼 수 없어...."

서러움이 밀물처럼 다시 몰려온다. 자꾸만 약해지는 내 모습은 힘겹기만 하다.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바쁜 우진 씨를 집 앞으로 와 달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래 갈게.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늦더라도 갈 테니까 물도 마시고 진정하고 있어."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한 결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시간은 밤 10시 20분.

비 내리는 길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겨우 다 다른 안정감이 이토록 강하게 밀려올 수가.


이제부턴 생각을 정리하자.

우진 씨에게 설명하려면 나부터 정리를 해야 한다.

어떻게 그 여자가 그 길에서 나를 기다린 듯 서 있을 수가 있을까?

난 어떤 경로로 그 여자에게 도달했을까?

분명 그 여자 한지은이 분명했다.

비는 강하게 내리치지 않았고 그 여자가 내 차로 가까이 와 문을 두드리기 직전에 강한 빗줄기로 바뀌었을 뿐.

그 여자에게서 도망치듯 운전했기에 그 정도의 기억은 생생히다.


그 여자가 분명했는데 조용히 있을 순 없다.

무슨 전략인 걸까?

집 앞 주차장까지 따라왔을 텐데 우진 씨가 혹시라도 그 여자에게 붙잡혀서 집으로 오는데 시간이 더 걸리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이 생긴다.

좌불안석.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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