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집념 15화

고독한 증명

by 로지

고단해진 몸을 옮기지 못한 채 그대로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다.

그가 오기로 약속한 시간을 훌쩍 지나 새벽 1시 30분이다.

시간을 확인한 동시에 울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따라 응급 환자들이 많았어. 오래 기다렸지? 도착했으니 문 열어줘"


기력이 떨어진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역시나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눈빛의 우진 씨는 조용히 날 한 번 안아주며 안으로 들어왔다.


"지원아, 오는 내내 생각해 봤는데... 어느 곳으로 드라이브를 했던 상관없이 한지은이 있을 순 없어.

그리고 왜 그렇게 혼자서 길을 떠났던 거야? 그것부터 설명해 봐. 왜 너답지 않게 혼자서 그런 거냐고."


마치 취조하듯 나를 몰아붙이는 설명과 질문이다.

내가 원했던 우진 씨의 반응이 전혀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했어. 갑자기 우리 사이에 나타난 그 여자가 계속 내게 접근하고...

어떻게 내가 정상일 수 있겠어! 처음으로 회사에서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고.. 나도 너무 괴로울 뿐이야."


혼자 힘겨운 싸움을 하듯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러니까 상대하지 말라고 했잖아. 나와 이별이 어려운 상태일 뿐이라고. 연락이 오더라도 무시해.

아예 차단해. 그러면 되겠어."


나로부터 생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우진 씨는 어째서 조금도 나의 고충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지 서운함이라기엔 너무나 큰 감정이다.

간단한 일 처리를 마치듯 쉽게 말하는 우진 씨다.

맞는 말이지만 난 그럴 수가 없다.

이미 그 여자는 나에게 필요이상 깊숙이 각인됐다.


중요한 건 그 여자가 왜 그곳에 있었냐는 거다.

비 오는 외각 길가 한가운데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 있는 그 여자가 두려웠다.


"그리고 사람을 잘 못 본거야. 이제라도 제발 생각을 멈춰.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어. 비 오는 길에서 우연히 비슷한 사람을 봤겠지.

너무 늦었어. 그만 가 볼 테니 나오지 말고 바로 자 지원아."


우진 씨는 내가 목격한 장면을 믿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잘못 본 게 아니다.

아무 때나 울리던 그 여자의 소식이 기다려진다.

그 여자였다면 어느 때고 나와의 조우에 대하여 따지기 위해 전화를 할 것 같다.

기다리던 연락이 오지 않자 식탁에 놓인 애꿎은 핸드폰만 노려봤다.






깊게 잠든 사이 악몽의 그림자처럼 꿈속에서도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잠을 못 자 초췌해진 모습이지만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침이 되어 그나마 공포스러운 감정을 이겨낼 수 있다.

혼자선 도저히 보기 힘든 빗속의 그 여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의지로 블랙박스 영상을 켰다.

날짜별 시간 기록을 찾아내 어제의 영상을 봤다.

알 수 없다.

그 여자의 모습이 없다.

아예 내가 무작정 길을 떠나 달렸던 영상의 초입만 남겨있을 뿐 이름 모를 동네로 들어가 그 여자를 마주쳤던 그 영상이 없다.

블랙박스 기기의 오류인지 모르겠지만 남겨져있지 않은 그 여자와의 기괴한 만남이 허상처럼 날아가버렸다.

너무 지친 나머지 빗속에 이름 모를 사람을 그 여자라고 착각한 걸까?

우진 씨에게 보여줄 증거영상이 없는 채로 지나가기엔 억울함이 가득 찬다.

어쩔 수 없다.

시간을 흘러 보낸 후 나도 내 정신을 가다듬어보는 수밖에.

우진 씨에게 그 증거 영상을 보여 준다 해도 우리가 달라지는 게 어떤 것일까.


피로해진 서로를 다독여주듯이 다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자상한 우진 씨는 예민해진 날 아이처럼 돌봐주듯 전화 횟수도 늘려 안전한 지 챙겨준다.

달라진 건 나 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 여자에게 정서적으로 끌려다니며 기어이 환상과 만나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며칠째 조용한 그 여자로부터의 연락은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속설과는 다르게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다.

마치 기다리듯 달력과 시간을 자주 보며 짧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내 할 일들을 차례로 하면서 다시 일상 속으로의 유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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