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이다. 체 게바라란 이름에서 체(che)는 아르헨티나식 스페인어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어이’ ‘이봐’ 정도의 의미를 지난 말로 체 게바라가 혁명에 뛰어들면서 스스로 이름을 이렇게 고쳤다고 한다.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그의 얼굴 사진은 붉은 티셔츠에 프린팅 된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진보적인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체게바라 평전 책의 내용은 잘 몰라도 붉은 바탕에 그의 잘생긴 얼굴 실루엣이 박힌 책표지는 한 번쯤 기억할 것이다,
1928년에 태어나 1967년에 39세로 죽은 체게바라는 살아 있었을 때도 쿠바와 남미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사후 더 많이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 ‘68 운동’ 당시 영웅으로 추대받았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측면에서 재조명되고 소비되고 있다.
그가 인생의 방향성을 찾게 된 것은 같은 의학도였던 알베르토와 함께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그가 살고 있는 대륙의 조상인 인디언들의 궁핍한 삶과 문화를 체험한다.
의사로 성장한 그는 다시 여행을 이어가며 불합리한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며 게릴라 지도자가 되었고 쿠바 혁명 이후 정치인,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게릴라 활동에 대한 군사이론을 만들기도 하였고 여러 저작을 펴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볼리비아에서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게릴라 활동 중에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그가 보여준 현실의 안락과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죽어간 삶의 궤적은 진보적인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혹자는 ‘혁명도 사회주의도 사라진 지금 오로지 체 게바라만 살아남았다’고 할 정도로 체 게바라는 이념과 국가를 떠나 전설의 혁명가로 살아남아 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런 자질이 없는 혁명가는 생각할 수 없다.
-체게바라-
프롤레타리아를 강타하는 비극은 가장 밑바닥부터 잠식해 들어온다. 광채가 사라진 그들의 눈동자에는 복종의 체념만이, 공허한 표정에서는 잃어버린 위안을 갈구하는 절박하고도 절실한 열망만이 읽힌다. 불합리한 사회적 신분 개념에 뿌리를 분 이러한 질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정부가 통치 성과를 선전하는 데에만 급급하기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데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 시급한 것이다.
-체게바라-
혁명은 다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다.
-체게바라-
왕십리 유흥가의 인형 뽑기 기계 안에는 우스꽝스러운 토끼와 청개구리 복장을 입힌 짱구들이 갇혀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다음 뽑히는 것이 자기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불안이 뒤엉킨 흔들리는 눈빛이 감돈다.
어떤 이는 드디어 여기를 벗어나 좋은 주인을 만나서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동료들을 밟고 올라가 집게 가장 가까이 눈에 뜨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어떤 이는 창쪽에 바짝 몸을 기대어 날 내보내달라는 레이저 눈빛을 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잔인한 주인을 만나 학대당하거나 며칠 귀여움을 받다가 장난감 상자 속 어두운 곳으로 영영 매장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이 안에서 한참이나 세월을 보낸 듯 체념하고 될 데로 되라는 듯 거꾸로 박혀있기도 하다.
이번엔 뽑힐 듯 뽑힐 듯 뽑히지 않아 남은 이들의 공허한 한숨소리가 기계 안에 울려 퍼진다.
어느 정도 상자가 비게 되는 날엔 어디서 끌려온지 모르는 토끼와 개구리옷을 뒤집어쓴 우스꽝스러운 짱구들로 기계상자 안이 다시 채워지곤 했다.
토끼와 청개구리가 뒤엉킨 상자 안이라니!
그것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왕십리 역을 지나던 선수는 우연히 발견한 짱구 인형 뽑기를 보며 발길을 멈추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