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안에서
다음은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에서 읽었던 이야기다.
한 회사 사장이 회사 문에 들어서자마자 화가 미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직원들에게 그렇게 당부했던 '회사 유리문 닦기'가 제대로 안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장은 유리에 비치는 손자국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그것이 사장에게는 트리거(trigger) 역할을 했다. 회사에 가면서 멀리서 문을 볼 때마다 사장은, “이번엔 깨끗하겠지”의 기대를 들고 왔다. 그 예상과 빗나간 결과를 맞이하는 도파민은 예측 오류의 실망감을 사장의 뇌에 적나라하게 확인시켰다. 애꿎은 직원들은 아침부터 야단을 맞았고, 회사 내 분위기가 하루 종일 꽝이었다. 그런 패턴이 계속 반복되고 있던 터, 사장이 이 악순환을 깨 보려 실천한 것이 있었다. 바로 사장이 출근하자마자 직접 문을 닦는 것이다. 문이 깨끗하던, 안 깨끗하던 매일 닦았다. 이 작은 행동 변화가 조직 문화에 생각보다 큰 변화를 주었다.
누군가의 행동 변화를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 먼저 실천한 리더의 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모든 이의 모범이 되는 리더다. 칭찬할 만하다. 작은 습관 하나 변화하는 것이 주는 가치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는 위의 리더가 실질적으로 변화하게 만든 것은 관점 차이라고 생각한다. 요지는 직원들로부터 실망하지 않도록 기대치를 낮추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리더란 어떤 사고와 행동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질문해 보니 위의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리더'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 목표라면, 이에 필요한 도구가 바로 '사고나 행동의 특징'이라는 데이터다. 세상의 경험을 데이터 보듯 바라볼 수 있다. 암흑 속에 사는 뇌가 바깥세상을 대하면서 늘 하는 일이다. 뇌 작동법과 유사하게 설계된 알고리즘만 봐도 연결고리가 보인다. 뇌의 입장에서 보면 바깥세상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저 눈, 코, 입과 같은 감각기관을 도구로 사용해 데이터를 받아볼 뿐이다. 그 데이터로 세상을 이해, 설명, 예측하려 든다. 낯선 환경에서는 뇌가 연애 초기에 나의 온갖 사소한 디테일에 대해 관심을 주는 사람 같았다면,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느껴지면 세세한 것에 덜 신경 쓰는 뇌로 변한다. 뭔가 예상과 어긋날 때 더 신경 쓰이고, 특정 단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에 기반에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은 회사 규모와 관계없이 조직 문화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아무래도 데이터가 직감보다 더 쉽고 빨리 퍼질 수 있는 것 같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리스크 등을 낮추는 데는 숫자만큼 정확하게 보이는 게 없어서일 것이다. 눈에 보이고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누구나 배우고 논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주관적 직감 같은 소프트 스킬을 도입, 공유, 지지하기엔 좀 모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소프트 스킬(soft skills)과 하드 스킬(hard skills)을 굳이 구별해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 아쉽다. 수치화하기 어려운 리더십, 창의성, 소통 스킬도 전문 지식만큼 중요한데 말이다.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데이터 분석이란 하드 스킬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소프트'한 스킬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빅데이터 분석은 사다리형으로 발전해 왔다. 묘사(descriptive), 진단(diagnostic), 예측(predictive), 처방(prescriptive)을 대표적인 분석 도메인으로 들 수 있다. 앞으로 더 나아가 AI와 같은 기술을 접목해 진행하는 인지(cognitive) 또는 자율(autonomous) 분석이라는 말도 나왔다.
묘사 분석은 데이터를 보이는 그대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어떤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무엇이" 발생했는지 묘사하듯 그려내는 것이다. 친구와 통화하다 "너 내가 아까 뭐 했는지 상상도 못 할걸!" 말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과거 정보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것이 묘사 분석이다. 이와 달리, 진단 분석은 의사처럼 발병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분석한다. 듣는 친구의 입장에서 "그거 왜 했어?" 또는 "그걸 나한테 왜 말해주는 거야?" 할 수 있다. 이처럼 데이터를 설명하는 데 끝나지 않고, 과거의 문제 원인을 분석하는 단계이다.
묘사와 진단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이것이 예측 분석의 목표이다. 일기예보, 주가 예측, 범죄 수사 프로파일러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더 가깝게는,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까?"라고 질문하는 뇌가 실시간 진행하는 분석법이다. 보통 데이터의 가치 창출 인사이트가 이 단계에서 많이 나온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과정, 결과 등을 전망할 수 있는 위치에 서면 앞으로 더 좋은 결과를 부르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처방 분석은 말 그대로 진단 결과에 따라 솔루션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떡하지?"에 답하는 역할을 한다. 유리창을 매일 스스로 닦기로 결정한 리더처럼 행동 변화를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어떤 정보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데이터기반 문제 해결 또는 의사결정 방식이 전혀 달라진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생각보다 기업에서 이런 인사이트를 많이 이용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 T와 F형 화법에 대한 영상을 자주 보게 되는 데, 볼 때마다 참 재밌다. 데이터 분석에서도 볼 수 있는 착시 현상과 비슷한 것 같다. 감정적 변화에 몰두하는 사람이나 논리적 인과관계를 따지는 사람이 캐치하는 데이터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바꿔 생각해 보면, 상대방의 우선순위를 고려하면서 내 입장을 어필하면 더 잘 수용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 특성상 불확실성이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요즘 그 불확실성이 유독 심해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코로나 확산을 지나오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환경적으로 지속되는 변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갈수록 충격적인 사건사고에 관한 소식을 너무 손쉽게 접하고 있다. 미국 이민법 변화를 매일 뉴스로 맞이한다는 변호사도 생각난다. 진로 고민이 많은 분들을 많이 대하다 보니 장차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것이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아직 모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불확실성이 위험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는 1921년 책에서 위험(risk)과 불확실성(uncertainty)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나이트에 따르면, 위험이란 주어진 상황의 결과를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확률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때 적용하는 반면, 불확실성은 정확한 확률을 설정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적용한다. 이 정의를 쓰자면, 슬롯머신 같은 규정된 환경 외에 정말 '리스크'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변수가 많고 변수 간 상호 영향력에 대한 정보도 희박하다. 과학자들이 몇십 년에 한 번쯤 일어날까 말까 하는 이벤트를 언젠가 정확히 예측할 수만 있다면 그 정보의 가치가 얼마나 클지 가히 상상조차 힘들다.
아직까지는 완벽한 100%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다. 결국 데이터를 잘 쓰는 리더란, 완벽한 정보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기준을 잘 훈련한 사람이다. 한편으로는, 불확실성이란 어쩌면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성장하려 아둥바둥하는 모든 이에게 정의를 부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런 불확실성 한 세상의 정보를 어떻게 바라보며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여지를 주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