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나는 간호사님 남편이다.

"나는 나인투 식스가 좋아"

by 송필경

“나는 나인 투 식스 근무가 좋아.”

아내는 자주 그렇게 말한다.
처음엔 그냥 피곤한 사람의 바람처럼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의 절실한

무게를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직장인의 ‘나인 투 식스’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예측 가능한 하루다.


하지만 간호사인 아내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데이: 오전 7시 출근, 오후 3시 퇴근

이브닝: 오후 3시 출근, 밤 11시 퇴근

나이트: 밤 11시 출근, 아침 7시 퇴근


근무표가 나올 때면
아내는 ‘데데이이이나나오’ 같은
마법의 주문처럼 보이는 근무 코드를 나에게 건넨다.

처음엔 장난처럼 웃고 넘겼지만,
이제는 그 안에 담긴 피로와 싸움을 이해한다.


특히 이브닝 근무는 아내에게 가장 지치는 시간이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무너지는 기분이야."
아침부터 걱정하며 기다리는 오후 3시.
출근 전부터 체력과 마음이 닳아간다고 했다.


나이트 근무 다음 날엔 쉬는 날이어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 시간이 나만의 시간이라서…

놓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아내는 잠을 자지 않고

버티다 잠들곤 한다.


데이 근무가 있는 날엔,
새벽같이 일어나 부스스한 눈으로 집을 나선다.
"미안, 나가야 돼."
그 말이 매일 아내의 하루를 여는 인사다.


그리고 출근보다 더 이른 시간에 도착해
인수인계를 준비한다.


"한 시간 전부터 환자 상태를 체크해야 하거든."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책임의 무게가
남편인 나에게도 천천히 스며들었다.


어느 날은 응급 상황이 생겨
몇 시간을 차 안에서 기다린 적이 있다.
처음엔 초조했지만, 나중엔 그냥 익숙해졌다.


차 안에서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간호사라는 직업은...
끝이 없는 긴장의 연속이구나.
몸이 고되고, 마음은 더 지치겠구나.”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아내가 그토록 바랐던 건,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너무도 평범해서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그 ‘나인 투 식스’의 삶이었다는 걸.


그녀에게는 그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하루의 평온함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