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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살짝 쿵?!(수박)

수박

by 필경 송현준

수박, 그리고 우리 안의 검은 씨앗들


흔히 수박을 두고 말한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초록색 단단한 껍질 안에 감춰진 붉고 달콤한 과육, 그리고 박혀 있는 까만 씨앗들. 어쩌면 그 솔직한 단면이 수박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정말 수박만이 겉과 속이 다른 걸까? 아니, 어쩌면 사람이야말로, 수박보다 훨씬 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을까?

우리는 매일같이 얼굴에 표정이라는 매끈한 껍질을 쓴다. 때로는 가면이라고 불릴지도 모를 그 껍질 아래, '친절'이라는 달콤한 과즙을 뿜어내고, '미소'라는 아름다운 빛깔을 보여준다. 적어도 수박은 그 붉은 과즙으로 우리의 갈증을 달래고 입을 즐겁게 해주지만, 사람은 언제나 그 속까지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다. 진심이라는 씨앗은 깊이 숨겨두고, 보이는 면만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때로 수박 속의 검은 씨를 성가시다고 말한다. 맛있는 과육을 먹는 데 방해가 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차라리 없는 것이 더 좋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 또한 저마다 마음속에 그런 검은 씨 같은 생각들을 품고 살지 않는가. 남을 향한 시기심, 자신만을 위한 욕심, 때로는 말하기 불편한 진실, 깊이 감추고 싶은 본심… 꺼내놓기 불편하고 삼키기 어려운, 그래서 꽁꽁 숨겨두는 수많은 '검은 씨'들이 우리 내면에 박혀 있다. 우리는 그 씨앗들을 교묘하게 감춘 채 살아간다.


가끔은 씨 없는 수박이 더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흠도, 방해도 없는 완벽함. 그러나 씨 없는 수박이 과연 진정한 수박 본연의 맛을 온전히 담고 있을까? 어쩌면 씨 없는 완벽함이란, 그저 겉모습만 그럴듯한 채 깊이 없는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점 없는 것을 좇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끊임없이 포장하고 꾸미려 드는 인간의 모습처럼. 속마음은 숨기고 완벽하게 연출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처럼.

수박은 겉과 속이 분명하다. 초록 껍질과 붉은 과육, 그리고 검은 씨. 변함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속이 바뀌는 사람, 하루에도 몇 번씩 색이 달라지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제는 사랑했지만 오늘은 미워하고, 오늘은 옳다고 여겼던 것이 내일은 그르다 생각하는 존재. 이런 우리들이 과연 수박을 두고 '겉과 속이 다르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수박은 그저 수박일 뿐이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어쩌면, 대상을 향해 판단의 시선을 던지는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의 이중성과 위선을 수박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지도. 우리 안에 뿌리내린 그 까만 씨앗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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