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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살짝 쿵?!(아이가 시험을 봤다)

아이가 시험을 봤다

by 필경 송현준

아이가 시험을 봤다: 점수 너머의 최선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시험 잘 봤느냐고. 아이는 세상의 모든 빛을 머금은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봤어요!” 그 맑은 웃음 앞에 엄마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번졌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작지 않은 불안감이 움트고 있었다. 아이는 모를 것이다. 엄마가 받아든 시험지는 온통 빨간 빗방울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는 것을. 빨간 글씨로 그어진 오답의 흔적들이 조용히 종이를 적시며 엄마의 마음까지 붉게 물들였다. 성적이라는 숫자가 주는 냉혹한 현실은, 아이의 순수한 미소 뒤에 숨어 부모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엄마의 입에서는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다. “넌 도대체 누굴 닮았니…” 그 말은 차마 아이에게 직접 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였다. 엄마의 시선은 조용히 곁에 선 아빠를 향한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아빠의 책임인 양, 원망 섞인 눈빛이 아빠를 관통했다. 아빠는 말없이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분위기 속에 침묵을 지킨다. 아이의 순수한 미소와 부모의 복잡한 감정은 시험지 한 장 위에 공존하며, 겉으로는 평온한 가정의 모습 뒤에 숨겨진 작은 파동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흘렀다. 그 날의 일은 가족의 마음속에 작은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아빠는 어색한 침묵을 깨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었다. “애가… 그때 왜 시험 잘 봤다고 했어?” 아빠는 아이가 혹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을 것이다. 어쩌면 성적이라는 결과의 잣대에만 매몰되어 살았던 아빠 자신을 돌아보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서 답을 구하려 하면서도, 그 답을 통해 자신 또한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었던 복잡한 질문이었다.


아이의 대답은 아빠의 모든 고민과 걱정, 그리고 부모의 불안을 한순간에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 대답은 한 점의 꾸밈도, 망설임도 없는 순수한 진심이었다. “저는요, 자기 자리에 앉아서 시험 시간 동안 문제를 끝까지 풀었어요. 정해진 규칙 속에서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아이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결과에 대한 염려도, 숨기려는 의도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과정에 대한 온전한 집중과 노력만이 빛났다.


그 순간, 부모의 마음속에서는 큰 울림이 터져 나왔다. 아이가 말하는 '잘 본' 시험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좋은 성적'이나 '성공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해진 규칙을 따르고,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끝까지 최선을 다한' 그 자체였다. 결과 지향적인 세상 속에서 우리는 과정의 아름다움과 노력의 진정성을 얼마나 자주 놓치고 살았던가. 아이는 작은 시험지를 통해, 어른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와 순수한 가치를 가르쳐주었다. 최선을 다한 과정이야말로 가장 값진 결과임을, 결과는 노력의 또 다른 형태임을. 아이는 작은 철학자가 되어 부모의 시선을 확장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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