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에필로그: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쓸 것이다
이야기가 끝났다. 손톱의 짧은 생명에서 삶의 순환을 배우고, 텅 빈 주유소에서 절박한 감사를 느끼고, 한쪽 깜박이 나간 차를 통해 나의 편협함을 되돌아봤던 여정이었다. 이 짧은 글들을 엮어 브런치북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지금, 나는 다시금 '쓰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왜 이토록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 어쩌면 그 끝없는 갈증은 삶의 모든 파편들, 즉 희미한 기억과 스쳐 지나가는 감정, 불현듯 찾아오는 통찰들을 붙잡아두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작은 울림을 주었을 때, 글은 비로소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된다. 그 한순간의 공감을 위해, 나는 멈추지 않고 쓸 수밖에 없었다.
삶은 언제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로또의 좌절과 달콤한 로망, '내일부터'를 기약하는 다이어트의 씁쓸한 유머로 가득하다.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교통정체처럼 막막하고, 때로는 해결되지 않는 근심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게 없는 자취'일지라도 이 땅에 흔적을 남기려 노력하고, '내겐 노력이야'라는 절규 속에서도 묵묵히 버텨낸다.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의 미지근한 여름 본능처럼, 안전한 선택을 갈구하며.
시를 숏폼 에세이로 바꾸는 과정은, 내 안의 오래된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어 다른 옷을 입히는 것과 같았다. 압축되고 함축된 언어 속에 숨겨진 나의 진심과 철학을, 좀 더 살갑고 구체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 그 속에서 나는 나의 글들이 어떻게 '내가 시처럼 안 보여도 시'가 되는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글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유의 깊이와 울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브런치북을 읽는 당신은 어떤 '시'를 보았는가. 나의 단상이 당신의 마음속에 작게라도 반짝이는 별똥별이 되어, 당신 안의 '詩'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우리가 만났던 시선과 세대의 그림자, 아이의 순수한 대답과 기침을 삼키는 밤의 부성애가 부디 당신의 삶 어딘가에 따뜻한 흔적을 남기기를.
나는 이 여정이 끝났다고 해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치 잘려도 조용히 다시 자라나는 손톱처럼, 또 한 계절쯤 멈춰 선 길 위에서도 엔진 속 따뜻한 심장을 잊지 않는 자동차처럼. 혹은 지독한 로또의 불운 속에서도 다음 주를 기약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나의 다음 글을 위한 첫 문장을 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은 아직 내 안에 무궁무진하게 살아 숨 쉬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