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가는길
오늘은, 쥐 덕분에 걸음의 의미를 배운 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였다. 도심을 벗어나 산으로 향하는 등산길. 나무 그늘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축축한 셔츠를 스쳐 지나갔다. 땀방울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려 할 때마다 바람이 살며시 감싸 안으며 잠시나마 갈증을 식혀주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자연이 주는 위로 덕분에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문득 내 앞을 걷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발걸음이 가벼운지, 등산로를 가파르게 오르는 모습이 힘차 보였다. 문득 그 여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 길을 오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앞서 걷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올렸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와의 간격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하필이면 바로 그때, 나의 종아리 근육이 섬뜩한 경고를 보내왔다.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쥐가 나는 듯한 고통이 발목을 붙잡았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간신히 길가의 벤치에 몸을 기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산복을 벗어 던지고, 뜨거워진 몸을 바람에 맡겼다. 여인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졌다. 맥이 탁 풀렸다.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갈까.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땀을 식히며 앉아 있던 내 시야에 그녀가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산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듯한 여유로운 발걸음. 아까는 보이지 않던 평화로운 얼굴이 마침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더라면, 그렇게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을. 서두르고 조급했던 나의 마음이 오히려 기다림의 미학을 빼앗아 간 것이다. 오늘은, 이 예기치 않은 '쥐' 덕분에 '기다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속도'를 잃은 바로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걸음' 그 자체의 의미를 배웠다.
경쟁에 지치고 조급함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앞만 보고 달린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조금이라도 더 높이. 그러나 그 속도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삶의 진정한 의미는 쟁취하는 데 있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으며 때로는 멈춰서 기다리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산길에서 얻은 교훈을 가슴에 새기며, 나는 조금씩 '기다림'이라는 미덕을 익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