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될 시간

인류애 충전되던 시간

by rainy

임신이었다.

몸의 변화를 느껴 인생 처음 해본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보았다. 이게 임신이 맞다는 건가? 진짜라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아직 엄마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어떡하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이가 생긴다면 낳을 생각은 있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물론 그 마음의 준비라는 것은, 시간이 더 지난다고 해서 생길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차원이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때부터 뒤늦게 벼락치기하듯 엄마 될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임신 기간은 몸의 힘듦과는 별개로, 인류애가 충전되던 시간이었다. 나는 어디서든 자꾸만 배려를 받았다.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은 함께 교무실 청소를 하는 와중에 내가 고작 비질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와서 빼앗기 바빴고, 부담임 선생님께서는 검진을 가느라 한 번씩 종례를 부탁드릴 때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뿐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든 마음 편히 부탁할 수 있도록 먼저 항상 따뜻한 말씀과 인사를 건네주시는 분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지던 임신 초기, 공강 시간에 잠깐 교무실 자리에 엎드려 낮잠을 잘 때면 동료들의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곤 했다. 그들의 작디작은 말소리에 ‘그럴 필요까지 없으신데… 너무 감사하다’ 생각을 하면서도 속절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도, 그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감동받고, 감사하다는 말을 자꾸만 하게 되던 시간이었다.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을 때는 그것을 ‘잘’ 받아야 하고, 이때의 고마움을 잘 기억했다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를 또 잘 돌려줘야 하겠구나, 마음 깊이 새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시기, 남편에게 받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그는 퇴근해 오면 항상 1시간 정도 게임을 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가 요새는 게임을 하지 않고 있음을 느꼈다.

“요새 왜 게임 안 해?” 묻자,

그는 “그냥.”이라고 답하며 “임신도 했고 이제 곧 아이도 태어나는데 게임은 끊으려고.” 하고 덧붙인다. 정말로 임신을 알린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그가 게임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게 된다. 게임하고 싶으면 차라리 바로 옆에서 할 수 있는 핸드폰 게임을 하겠다며 갑자기 핸드폰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웃긴 결말.


원래부터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기에 임신을 했다고 해서 특별해질 것도 없었다만, 임신 기간 중 그에게 받은 마음 씀들은 그와 결혼하길 역시 잘했고 그는 좋은 아빠가 될 거라는 확신을 더해주어, 내가 엄마 될 마음의 준비에도 큰 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문득 임신 기간 중 서러운 일을 겪으면 평생 못 잊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정말 맞는 말이다. 반대로, 임신 기간 중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고마운 마음들도 평생 못 잊을 것이기 때문에.


다시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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