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1일, 일요일, 밤 9시 28분 05초.
김민준의 사무실을 가득 채우던 것은 더 이상 벨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수천 개의 원혼이 동시에 울부짖는 것과 같은, 디지털 세계의 아우성이었다. 그의 업무용 휴대폰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카카오톡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 알림으로 발작하듯 떨리고 있었다.
그는 홀린 사람처럼 '불개미 군단'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곳은 더 이상 그를 신처럼 숭배하던 세상이 아니었다. 그를 찬양하던 모든 게시물은 이제 분노와 저주, 그리고 절규의 장으로 변해 있었다.
'내 딸 수술비… 내 전 재산… 김민준 이 개새끼야!'
'이놈 신상 전부 털어서 뿌려라! 부모가 하는 떡볶이집부터 찾아가자!'
'사기꾼 새끼,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은 이제 끝났다.'
그가 쌓아 올린 신전은 불타고 있었고, 그의 신도들은 이제 그를 찢어 죽이려는 악귀가 되어 있었다.
같은 시각, 한소희의 오피스텔.
한소희는 와인을 마시며 웨딩드레스 잡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김민준이 마무리 짓고 있다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 끝나면 시작될, 꿈같은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때, 친구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소희야, 이거… 민준 씨 얘기 맞아? 뉴스 메인에 떴는데…' 메시지에는 인터넷 기사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링크를 클릭했다.
[단독] AI 투자 귀재 'Next Buffett', '페르소나 캐피탈 대표' 그 정체는 떡볶이집 아들… 수백억대 폰지사기 정황.
그녀는 피식 웃었다. 경쟁사에서 퍼뜨리는 악의적인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사를 읽어 내려갈수록 그녀의 미소는 사라졌다.
'계약직 직원', '지방대 출신', '경제학 원론 재수강'… 그녀가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심장을 멎게 한 문장이 나타났다.
'…김 씨는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수십억 원의 자금을, 연인인 한OO 씨의 VIP 계좌를 통해 관리해온 것으로…'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 조각이 섬광처럼 맞춰졌다. 세금 문제라며 자신의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던 그의 부탁. M&A 계약금이라며 은행 VIP 창구에서 사인하게 했던 수많은 서류들. 그녀는 그의 성공을 위한 조력자가 아니었다. 그의 범죄를 위한 방패막이이자, 모든 죄를 뒤집어쓸 총알받이였다. 그가 속삭였던 모든 사랑과 미래는, 그녀의 명의로 된 계좌를 이용하기 위한 가장 정교한 연기였을 뿐이다.
"아… 아아…"
그녀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겨우 서 있던 그녀는 미친 듯이 김민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모든 전화는 꺼져 있었다.
쾅! 쾅! 쾅!
허탈하게 주저 않은 한소희의 오피스텔 현관문을 누군가 거칠게 두드렸다. 그녀가 공포에 질려 현관문 렌즈를 들여다보았을 때, 그곳에는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서 있었다.
"한소희 씨?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입니다. 페르소나 캐피탈 사건 관련해서 조사할 게 있습니다. 임의동행 해주시겠습니까?"
그녀의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화려했던 미래는, 차가운 철문 앞에서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김민준은 마지막 남은 생존 본능으로 움직였다.
그는 노트북과 휴대폰 몇 개만 챙겨 들고 사무실을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힘 없이 목적지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가 돌아갈 곳은,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바로 그곳뿐이었다.
반지하 원룸의 현관문을 열자, 몇 달 전 그가 버리고 떠났던 과거의 시간이 그를 맞았다.
그는 힘없이 낡은 TV의 전원을 켰다. 화면 속의 메인 뉴스가 그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앵커의 목소리 뒤로,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그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볶이 가게였다.
가게 앞은 수십 명의 기자들과 카메라, 그리고 분노한 투자자들로 둘러싸여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무뚝뚝하고 고집 세던 그의 아버지. 아버지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어머니는 실신한 듯 오열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자식을 잘못 키웠습니다!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갈라진 목소리가 TV 스피커를 뚫고 나와 민준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부모님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전국적인 수치를 안겨드린 것이다.
김민준은 TV를 끄고, 어둡고 좁은 반지하 원룸의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모든 감정 회로가 끊어져 버린 듯했다. 그는 노트북을 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뉴스도, 커뮤니티도 보지 않았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그의 계정, 'Next Buffett'. 그곳은 아직 불타지 않은 유일한 성역이었다.
그는 분노와 저주의 댓글들을 무시한 채, 자신의 피드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크롤하기 시작했다. 렌트한 포르쉐, 와인잔, 강남의 야경, 그리고 한소희와 함께 웃던 모습까지. 그곳에는 그가 꿈꾸던, 그리고 아주 잠시나마 진짜라고 믿었던 완벽한 김민준이 살고 있었다.
쾅! 쾅! 쾅!
그의 반지하 원룸의 낡은 현관문이 부서져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민준 씨! 경찰입니다! 문 여세요!"
하지만 민준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의 세상에는 오직 노트북 화면 속, 가장 완벽했던 자신의 모습만이 존재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사진을 찾아, 그 위로 마우스 커서를 가져갔다.
쾅!!
거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방 안으로 경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노트북 불빛에 의지해 멍하니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김민준은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여,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가장 완벽했던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좋아요'를 누른 것이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연기였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하고 공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페르소나 캐피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