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전야(暴風前夜)
모든 건 고요했다.
그러나 그건 진짜로 시작되기 전,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평화였다.
하늘이 채 어두워지기 전에 이른 저녁 식사가 도착했다.
내 식판에는 '항암식'이라는 작은 쪽지가 붙어있었는데, 메뉴 구성물 자체는 엄마의 식판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항암식은 조리 방식이나 원재료 자체가 더 순하고 소화가 잘 되도록 구성된 식단이었다. 아침마다 내 식판 위에만 놓여있던 주스가 내가 하루를 더 버틸 수 있게 해 준 양분이었던 셈이다. 나는 또... 특별히 멸균된 음식인 줄 알았지 뭐야.
하루 종일 할 것 없이 SNS만 보던 것도 슬슬 지루해질 무렵에야 첫 항암약이 도착했다.
수액 줄이 바뀐 뒤에 내 얼굴보다 커다란 주머니 팩으로부터 천천히 떨어지는 약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항암 약은 생각보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그때까지도 실감이 잘 안 났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총 4번의 항암약과 한 번의 부작용 방지제를 맞았다. 약 하나당 2시간에서 3시간 투여했다. 오래 걸리기도 하고 너무나 멀쩡해 보였던 탓일까, 엄마는 날 언제 걱정했냐는 듯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게임만 했다. 나는 입술을 비죽였지만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을 엄마에게 쉬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조용한 병실 안에 있으니 솔솔 잠이 쏟아져서 그냥 가만히 있고 싶었다. 처음엔 지루한 탓에 졸린 줄 알았는데, 이것 또한 어디서 주워듣기로는 항암제를 맞으면 원래 졸리단다.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때엔 이미 하나를 다 맞고 다음 약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본래 잠귀가 밝아 작은 기척이나 불편함에도 쉽게 눈을 뜨는 체질인데 그것도 모르고 잘 잔 걸 보니 약이 강하긴 했나 보다.
다음날이 되어도 내 몸은 큰 변화가 없었다. 아침밥도 평소처럼 잘 먹었다.
유일한 변화라면, 잠이 많이 쏟아지는 것과 병원 식사 시간이 일찍 시작되는 탓에 강제로 바른생활형 인간이 되어야 했던 점 정도?
엄마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며 미리 잔뜩 챙겨 온 생수병을 자꾸 건넸다. 나는 원래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체질이라 그것조차도 꽤 고역이었다. 몸에 들어온 약과, 과잉 공급된 수분 덕에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거려야 했는데, 수액 주머니가 매달려 무거운 폴대를 매번 질질 끌고 다니는 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었다.
케모포트를 해서 두 손이 자유롭긴 했지만, 수액연결관은 여전히 거슬렸다. 움직일 때마다 묘하게 들뜬 테이프가 신경 쓰였고, 혹여 바늘이 빠지지는 않을까 내내 긴장되었다. 마치 무거운 족쇄를 차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틀 정도는 꼬질꼬질한 채로 지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겨우 머리만 감았다.
퇴원할 때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대기 표와 막대한 금액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음 입원 예약도 미리 해야 했다. 그렇게 보험용으로 제출할 수많은 서류들과 영수증을 한 아름 안은 채로 2박 3일간의 수감생활 같은 병원 생활을 탈출할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는 건 삼주 뒤.
나는 그때까지도 이 정도면 할만하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