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혼돈의 미로 속, 너
한없이 기다렸던 시간은 아니었다.
누구와의 약속처럼 정해진 때도 아니었다.
하지만 계절이 오고 가듯,
너는 그렇게 조용히 내 앞에 다가왔다.
길손처럼,
그저 잠시 머물러 쉼을 얻고자 했던 걸까.
아니면
긴 방황 끝에 지친 몸을
이제 정박하려는 것이었을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그저 제자리를 돌뿐,
벗어나려는 걸까,
아쉬움에 다시 한번 다가서려는 걸까.
이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널 사랑했기에.
하늘에서 첫눈이 내리던 밤,
가로등 빛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빛 아래,
마음이 조용히 떨려왔고,
나는 그것을 감추려
조용히, 혼자서 달려보았다.
저 멀리 어둠 속,
누군가 그려놓고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그림을 찢어내려
손을 뻗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나는 또다시 밀려버렸다.
그래도 나는,
찾고 싶었다.
나의 머릿속에 피어 있던
매화 한 송이를 꺾고 싶었다.
흔들리는 세월 속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그저 너의 존재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너에게 있어 나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그때의 너야,
기다림도 아니었고,
약속된 만남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
너는 마음의 창을 열고
누군가를 맞이하려 애썼지.
그 모든 혼란과 흔들림 속에서도
너는 마음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
사랑했기에,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또 사랑했기에
조용히 뛰어보며 마음을 감추려 했지.
찢기지 않는 그림,
닿지 않는 거리,
알 수 없는 힘에 자꾸 밀려나는 순간 속에서도
너는 끝까지 손을 내밀었구나.
그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따뜻하게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어.
매화처럼 피어 있는 너의 진심은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어딘가 누군가의 마음에는
분명히 닿았을 거야.
그때의 너야,
오늘 너의 글을 읽었어.
혼돈 속 미로를 걷는 것처럼
갈팡질팡하던 너의 모습이
문장 사이사이에 고스란히 묻어 있더라.
솔직히 말하면,
이 글로는
그때 너의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그래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토록 순하고,
다정했던 너였기에
더 잘 안아주고 싶었는데.
정말 고마워.
그때의 너도,
지금까지 와준 지금의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