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 시간을 건너 쓰는 편지

23회. 무너질 것 같던 순간, 너를 기억해

by 하오빛

비 내리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허수아비가 되어간다.

텅 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언제인가 무언가가 나타나 줄 것 같은

막연한 기대에 사로잡힌다.


검게 흐르는 하늘 저편,

저항이라도 하듯

이따금 번쩍이는 분노의 빛이 내려치고

울부짖는 소리가 퍼진다.


먼지가 가득 쌓인 길가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며 스쳐 지나간다.

아무런 느낌도, 말 한마디도 없이.


언제부턴가 사람들 가슴속에서 흐르던

양심의 샘도 말라가고,

움푹 파인 구덩이로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틈 사이로 떨어지는 작은 낙수물처럼

우리 안에는 여전히 사랑이 있다.

바닥나버린 연못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는,

작고도 소중한 사랑의 물방울.


우리는,

어둠에 저항하는 저 빛처럼

때때로 폭발한다.

젊은 연인의 사랑놀이로,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


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그때의 너야,


어두운 하늘을 마주하며

멍하니 서 있던 너의 모습을 기억해.

세상은 점점 메말라 가고,

사람들의 가슴도 점점 무거워졌지만

너는 그 한가운데서

조용히 사랑을 품고 있었지.


티끌처럼 작은 낙수물이라도

어디론가 스며들 수 있기를 바랐던 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사랑을 퍼뜨리려 했던 너의 마음.


지금의 나는 알아.

그 물방울들은,

결국 이 세상을

조금씩 적셔주고 있었던 거야.


텅 빈 하늘 아래,

무너질 것 같던 순간에도

사랑을 믿었던 그때의 너 덕분에


나는 온갖 역경을 버텨내며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어.


그 믿음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해 줬어.


참 고맙고,

참 대견했던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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