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 시간을 건너 쓰는 편지

25회. 유리창에 새긴 이름

by 하오빛

어두워진 창에

빗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골진 지붕을 타고

한 방울, 두 방울,

리듬을 타듯 내려온다.


조심스레 창을 열고

손을 살며시 내밀어본다.

방울지어 떨어지는 빗물을

손바닥에 받아본다.


부드러움에 놀라

손을 살포시 펴보지만

빗방울은 이내 사라져 버린다.

무언가를 쥐려 했던 걸까.

고개를 흔들며 다시

조심스럽게 받아보고 또 쥐어보지만

결국은 또,

빈 손이 된다.


마치 첫눈이 내리는 겨울밤,

눈 맞으러 나가

옷깃에 내려앉은 눈송이가

스치듯 사라지는 것처럼.


그리움도 그렇게

잊으려 눈을 감고 또 감아도

문득 떠오르는 얼굴.


세월에 맡기려 해도,

빛바랜 사진 속

희미한 얼굴을 애써 보려 하듯

깨지지도, 녹아버리지도 않는 그리움.


나는 결국,

희미한 이름을 되뇌기 위해

애쓰는 이가 되고 말았다.


비 내리는 창에

입김을 불어

지워지지 않는

그 이름을 새겨본다.


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그때의 너야,


작은 빗방울 하나에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쥐어보던 너.

결국 손가락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손을 내밀던 너.


그 마음,

참 예뻤구나.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굴,

잊으려 해도

마음속 깊이 남아있던 이름.


그 모든 걸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받아들이던 너였지.


지금의 나는 알아.

그 모든 흔적이

지금의 나를 더 깊고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음을.


참 고맙고,

참 사랑스러웠던 너야.


하오빛 라디오 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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