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둘러보다 보면 작가 구독자 수와 글 퀄리티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처음 나도 브런치 세계를 입문하였을 때 구독자가 인기의 척도인 줄 알았고, 구독자를 어떻게 하면 빠르게 올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3000자 넘는 긴 글을 쓰지 말자
전문적이거나 학술적인 글을 쓰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거 말고 너가 좋아하는 글을 쓰자
브런치를 시작하고 그동안 인기 있는 브런치 글들을 분석하였다.
위의 지침들은 앞으로 나는 어떤 브런치 글을 써갈지 내린 결론들이었다.
그리고 몇 달간 철저히 이런 글들을 브런치에 쓰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소개할 배대웅 작가를 알게 된 후
내가 가졌던 브런치 글쓰기 태도에 많은 변화를 끼치게 되었다.
배대웅 작가는 위에 언급한 내가 세운 3가지 지침을 다 지키지 않는 글을 쓴다. 그것도 무려 3년 이상 써오셨다.
결과는...?
당연하겠지만 인기가 없다.
마케터 기준으로 3년 이상 브런치에 글을 썼는데 구독자가 500명 정도라는 건 브런치에선 진짜 인기 없는 작가임은 분명한 거 같다.
그러나...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작가를 꾸준히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많다는 것을...
허울뿐인 5천 명 구독자 보다 똘똘 뭉친 500명의 찐팬 작가들이 꼭 들리는 글 맛집이라는 것을...
어느새 나도 그의 팬이 되어 그분의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뜨면 일단 먼저 달려가 읽는다. 짜임새 있고 새로운 관점으로 쓰인 글을 보며 보통 작가가 아님을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브런치에선 인기가 없지만 그의 저서 <최소한의 과학공부>는 대형 서점 과학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2 쇄도 찍기 힘들다는 출판시장에서 무려 5쇄나 발행한 찐 능력자이자 힘숨찐(힘을 숨긴 찐 캐릭터)였다.
이 분과 4주간 글쓰기 수업을 하였다.
이 글에서는 4주간 글쓰기 수업을 한 후기를 적으려 한다.
사실 앞으로 많은 작가들이 배대웅 작가와 함께한 글쓰기 세미나가 좋았다는 얘기들을 적을 예정이니(?) 비평을 좋아한다는 그의 취지에 따라 나는 삐딱한 시선으로 신랄하게 비판점만 적어보도록 하겠다.
매주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 그날 나눌 발제문을 미리 준비해 주셨다. 발제문 자체만으로도 훌륭했고, 추후 이를 글쓰기 책으로 엮을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번 세미나의 주요 텍스트가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였기에, 발제문에 해당 책의 인용이 많은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만약 책으로 출간한다면, 자칫 윌리엄 진서 저서에 대한 풀이나 해설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작가님만의 글쓰기 철학이 연결된 개인적인 경험담과 작가님 본인의 글들이 더 많이 담긴다면, 훨씬 더 배대웅 작가님다운 글쓰기 이론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발제문 전체를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애초에 '비문학 글쓰기'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지만, 발제문 속 주장들을 보면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가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다. 사실 발제문에서 다룬 내용들은 문학에서도 필요한 부분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글쓰기'라는 큰 범주 안에 있기에, 핵심 주장이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만약 배대웅 작가님께서 글쓰기 책을 쓰신다면, 굳이 비문학과 문학의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비문학 글쓰기만의 차별점을 좀 더 명확히 해서, 문학과의 경계를 분명히 설정해 두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건 나의 글쓰기 가치관과 연결된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글쓰기 책을 읽고 강좌를 들으면서, 글쓰기에 대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들은 분명 있었다.
간결하게 써라,
첫 문장에 신경 써라,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 마라,
리듬감 있게 써라 등등...
(이번 4주 글쓰기 세미나에서도 이런 부분을 다루었다.)
물론 이런 가르침들이 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다 그럴까?
우리가 '좋은 책'이라고 꼽는 작품들이 이런 이론들을 모두 지키고 있을까?
내가 직접 다 찾아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중언부언하는 문장 안에서도 강력한 메시지와 가슴의 울림을 느낀 적이 있고, 간결하지 않고 한 문장이 몇 페이지씩 이어졌지만 그것을 끊지 않고 묘사해 내는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한 적도 있다.
사실 이런 게 글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상식을 파괴하고, 원칙이라 여겨지던 것을 깨부수것들 말이다.
그래서 만약 내가 글쓰기 방법론 책을 쓴다면, '이 방법이 맞다'는 식의 단언적인 표현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후에 나올 배대웅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책도 어떤 내용으로 담길지 굉장히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나와 비슷한 글쓰기 철학을 가진 나심 탈레브의 문장으로 배대웅 작가와 함께한 4주 글쓰기 세미나 후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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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도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어선 안 된다. 그가 글쓰기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 나심 탈레브 <블랙스완과 함께 가라(원제: The Bed of Procrustes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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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세미나 중에 '정말로 글쓰기를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고통스럽지만 성취감이 있다는 답변, 글쓰기가 나를 치유한다는 답변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중에서 배대웅 작가님의 대답이 심플하면서도 확실해서 기억에 남았다.
"저는 제가 진짜 좋아서 합니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든 말든, 꾸준히 본인이 좋아하는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글을 계속 쓰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은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 꾸준한 사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글쓰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배대웅 작가는 사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닮아가고 싶은 작가이다.
함께 글쓰기에 대해 나눠볼 수 있는 소중한 4주간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배대웅 작가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