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삭제 버튼을 눌렀는데 복구창이 떴다

-마음 정리도 컴퓨터만큼 쉬웠으면 좋겠는데...-

by 월화수 엔 Jane

글쓰기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어서,

예정에 없던 번외편을 써봅니다.


새벽 3시, 또 잠이 안 와서 컴퓨터를 켰다.

별생각 없이 바탕화면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예전 프로젝트 폴더가 눈에 띄었다.

클릭해 보니 당시 야근하며 만들었던 기획서들이 가득했다.

지금 보니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며 살았을까.

삭제하려고 우클릭을 눌렀다.

결국 나는 '삭제' 버튼을 눌렀다.

폴더는 휴지통으로 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는 '이 파일을 복구하시겠습니까?'라는

보이지 않는 창이 깜빡이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컴퓨터는 우리를 속이고 있었다.

IT 업계에 있는 친구가 알려준 이야기다.

"파일을 삭제해도 실제 데이터는 하드디스크에 그대로 남아있어.

다만 운영체제가 '이 공간은 이제 새로운 데이터로 덮어써도 된다'고 표시만 하는 거야.

그래서 복구 프로그램으로 지운 파일을 되살릴 수 있는 거고."

놀라웠다.

우리가 '삭제'라고 부르는 건 사실 '접근 차단'이었다.

진짜 지우는 게 아니라, 그냥 못 보게 가리는 것뿐.


그럼 인간의 뇌는 어떨까?

뇌과학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접근하기 어려워질 뿐이다.

트라우마 치료도 결국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기억에 새로운 '태그'를 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꿨다

"잊어버리자"는 다짐을 그만뒀다.

대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기억은 내 하드디스크에 영원히 남아있을 거야.

하지만 새로운 경험들로 계속 덮어쓸 거야.


덮어쓰기의 기술

요즘 나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든다.

그 카페에서 힘들었던 기억?

같은 자리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며 새로운 추억을 덮어쓴다.

완전한 삭제는 불가능하지만, 무한정 덮어쓰기는 가능하다.



글쓰기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계속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글을 써야 할까?"

그런데 답은 이미 컴퓨터가 가르쳐줬습니다.

글쓰기도 결국 덮어쓰기의 과정이라는 걸.

과거의 기억 위에 오늘의 생각과 감정을 겹쳐 써 내려가며,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조용히 안아주는 과정인 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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