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새 친구 사귀기 가능?

남다른 엄마와의 브런치 카페 대화를 통해..

by 김태경

대학원 졸업하고 바로 입사하여 한 회사에서만 20년 가까이 일했다.

회사 내에서는 나름 중견 직원으로 동료 선, 후배 많이 잘 알고 지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가장 친한 내 친구는 이 얘기 저 얘기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직장 동료 중에 있다.

대학, 대학원 동창들은 다들 일하고 아기 키우는 워킹맘들이라 가끔 안부나 묻고 그중 제일 친했던 친구들은 분기나 반기별로 한번 만날까 말까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애들 챙겨 학교 보내고 나 출근하고, 종일 열일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애들 챙기고 치우고 씻고 자는 하루들이 반복되는 워킹맘. 게다가 40대부터 찾아온 급격한 체력 저하는 주말이면 하루 2끼 준비하고 먹고 설거지 하는 것도 벅찼다.

회사 나가면 머리는 아픈데 몸은 안 힘들고, 집에 있으면 머리는 안 아픈데 몸이 힘들고..

그래서 회사에 있으면 집에 가고 싶고, 집에 있으면 회사 나가고 싶다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다 큰 아이들 육아로 휴직을 하고 집에 있으니 이런 호사가 또 있겠는가.

시간사용, 취미, 도전.. 좋고 누릴 것들 풍성한데 다만 한 가지 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 만나는 것.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살던 동창들은 전국구로 찾아다니며 롱타임 노씨 하고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새로운 사람 사귀는 건 약간 어렵다.

새로운 사람이래 봤자 지금은 동네 사람들 정도다.

아이 둘이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나고 자랐지만 재개발 지역이 포함되어 있어 친분이 있던 집들은 진즉에 여기저기로 이사를 나가버렸다.

길 지나다니며 눈대중으로 이 엄마는 00 엄마, 저 엄마는 00 엄마인 건 알겠는데 쉽사리 먼저 가고 말 걸기가 어렵다. 분명 나 옛날에는 안 이랬는데 나이 들수록 더 한 것 같다.

자꾸만 관심은 내 안으로만 향하고, 내 팔은 내 가족에게만 굽어 가는 것 같다.


며칠 전 큰 아이 학교에 일이 생겼다.

내 아이랑 친한 아이의 엄마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연락을 해 왔다. 마침 학교에서 부모 교육이 있던 터라 교육이 끝나고 만나기로 했다.

누구 엄마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엄마가 워낙 동네 인싸 엄마였던 터라 소심인인 나는 범접하기 어려웠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예쁘게 자신을 잘 꾸미고 다니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프리랜서 비즈니스 우먼으로 보였다. 그래서 약속 당일 아침에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상대적으로 너무 꿀리는 것 같다는 생각과 그냥 나는 나대로 편하게 보면 되지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교육을 마치고 그 엄마와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이미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를 염두하고 차를 가지고 이동을 했다. 나를 자신의 고급차에 태워 브런치 카페로 향한 그 엄마의 남다른 적극성에 약간 놀랐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굴려고 노력했다.

동네 주택가 끝 도무지 안 보이게 자리 잡은 브런치 카페에는 이미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펼치고 있었고 나와 그 엄마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약 2시간 반 가량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학교 생활, 공부이야기 등등이 이어졌다. 그 엄마는 열심히 살아왔고 또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살면서 본인이 배우고 느꼈던 것을 아이도 경험해서 알게 하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고 공부가 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공부보다 더 중요한 많은 것들을 통해서 아이가 더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적응과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집 아이 엄마와 교류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돕고 돌봐주면 결국 그 아이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런 노력이 궁극적으로 본인의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토록 세련되고 바쁘고 화려해 보이는 그 엄마의 마음속에 상당히 공동체적이면서 타자중심적인 관점이 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들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

첫째는,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만한 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더 나은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고 겉모습으로만 상대를 재단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이건 당연히 알고 또 내가 누누이 하는 말임에도 정작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내게는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편견의 벽을 제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엄마와의 브런치 대화가 그분에 대한 내 편견을 직면하는 자리였고 타파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둘째는, 내가 나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 앞에서 나를 두고 스스로 나를 평가하는 소녀적, 사춘기스러움을 벗은 나이가 된 듯하다는 것이다. 엄청 예전 같았으면 저 사람은 가지고 나는 가지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며 브런치 대화의 내용보다는 못난 나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 같은데,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그 엄마와 대화에서는 그랬다. 그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온전히 대화의 내용을 더 확장시키고 내가 동의하는 부분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며 대화를 함께 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야 하는 건가 보다.

나와 다른 생각의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몸소 깨달아 보고, 보이는 겉이 아니라 속사람을 보고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깨달아 배워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또 다행스럽게 새로운 생각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 대는 습관적이고 세속적인 인식의 틀을 깨고 사람들의 속사람을 보려고 노력하고,

나 역시 자연스레 내 속마음을 꾸밈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40대 중년이 되어서도 새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보다 나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져보려고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더 나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전제조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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