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가 더 좋을 수도..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하다가 육아휴직 중에 있다.
큰 아이 중학교 2학년, 둘쨰는 초등학교 3학년. 둘 다 남자아이이다.
아이들 출산 후 90일간의 출산 휴가만 하고 회사 복직했었고 결국 큰 아이 육아휴직은 사용하지 못했다.
작은 아이 초등학교 3학년 되기 한 달 전 막차 타고 정당하고 합법적인 육아휴직 중에 있다.
아이들 커서 육아휴직하니,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다.
학교 가고, 학원 가고, 알아서 놀기 때문에 나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다닐 적 보다 육아는 훨씬 많이 한다. 작은 아이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여도 꼭 데리러 가고,
매일 오후 4시 30분이면 매일 다른 종류의 간식을 만들어 놓고, 주중 저녁식사는 배달이나 외식 아니고 집밥으로 아이들 아빠까지 다 같이 먹는다.
집안일을 하며 누리는 풍성함 들은 이미 글로 연재한 바가 있어 생략하겠다.
집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아이들의 사생활에 신경이 더 갈 수밖에 없다. 특히 중학교 2학년 큰 아들.
엄마의 휴직으로 수입이 줄었다는 것을 안 큰 아들은 동생한테 간식 좀 그만 먹으라고 타박도 주고, 사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공연이 있어도 택 1 하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내 눈치를 보며 필요한 것을 얘기한다.
우리 집이 당장 돈 없는 가난한 상황은 아니지만 몇 달 전보다 수입이 줄어든 것은 맞으니 중학생 정도면 이 정도의 가정 경제에 대한 인식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큰 아이의 사생활은 하교 후 집에 오면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월, 수, 금은 하교 후에 집에서 간식 먹고 1시간 정도 놀다가 영어 학원에 가고 화요일은 드럼 배우러 간다.
수학학원에서 내주는 숙제양과 장시간 학원 기거 시간에 찌든 친구들을 보더니 안 다니겠다고 해서 아직까지 다니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아들의 수학 선생님인 '김태수'라는 부캐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거의 매일 수학 숙제를 내주고 채점하고, 새로운 단원을 시작할 때는 EBS 강의를 같이 듣는다.
일차함수 기울기 구하는 공식이 기억나는가. 다행히 소금물 농도 구하는 문제는 없어진다고 하니 한결 낫다.
우리 남편은 내게 큰 아들이랑 같이 공부해서 같이 수능을 보는 건 어떠냐는 농담까지 건넸다.
암튼 회사를 다닐 때든 휴직 중일 때든 아들과 나의 생활 패턴은 동일하다.
달라진 건 나다.
더 이상 퇴근 후 복잡한 회사일, 사람일 머릿속에 넣어 둘 필요 없으니 아이 수학 선생님 모드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 하필 최근 1~2주가 기말고사 기간이었던 탓에 내 관심은 더 아이의 시험에 갔다.
공부에 대한 잔소리를 너무 해서도 안되지만, 또 너무 관심 없는 척해서도 안 되는.. 어떤 그러한 애매한 경계를 가지고 아이를 대해야 하므로,
아들을 향한 내 표정, 말투, 태도를 다음의 정신에 입각하자 마음먹었더랬다.
"아들아 괜찮아. 네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
시험은 100점이 아니라 집념을 길러 나가는 걸 목표로 하는 거라고 엄마는 생각해. 공부하는 것도 일종의 용기거든. 왜 하필 공부에 집념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하겠지만.. 커 갈수록 더 어렵고 복잡한 일들이 많이 생기거든. 여러 과목을 배우고 공부하면서 너 스스로 목표도 정해 보고 올라가 보고 내려가보고 하면서 너 스스로가 너 자신이 마음먹고 시도하면 제법 해 내는 사람, 잘 안되더라도 끝까지 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길 바라.
이 경험들이 앞길 창창한 네 인생에 유익한 밑거름이 될 거야. 그러니 100점을 맞냐 안 맞냐가 아니라 네가 어디까지 해 보고, 어디서 포기하고, 어떻게 마음이 바뀌는지 등등을 겪어 나가면 좋겠어.."
총 7과목의 기말고사를 치고 온 내 아들. 이번 수학 점수는 좋지 않았다.
그 뒤로 내 말투와 태도, 표정은 나름 위의 정신에 입각해서 취하는 데는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내 속은 그렇지 않았다.
'왜 이걸 이렇게 많이 틀린 거지? 다 풀었던 문제 아닌가? 집중해서 안 한 거 아니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틀린 거지? 뭐가 문제인 거야? 의지가 없는 거 아냐? 이걸 어떻게 해야 돼?
뭘 걸고 공부를 시켜야 하나? 뭘 뺏는 방식으로? 혼을 내야 되나?..........................!'
나는 내가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엄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들은 이번 수학 시험 문제 풀 때는 마음도 졸리고 시간도 부족했다며 이제는 수학학원을 가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래, 한번 알아보자"라고 답했지만 내 속은 사실 이랬다.
'니 의지 문제 아냐? 의지가 없는데 학원을 간다고 점수가 나오겠니? 학원 가서 점수 잘 맞으면 다 학원 다니게. 학원은 다 돈 벌려고 하는 건데. 하루 종일 학교에 있는 시간이 얼만데 학교에서 해결 못하고 학원까지 가야 하니? 학교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이니? 학원에 한 달에 40만 원씩을 내야 하는데, 너 수학 점수 얼마 맞아 올 수 있는데? 100점? 응?? '
오 마이 갓이다...
내 친구의 고등학생 딸이 했다는 말이 기억났다.
"내 친구들이 다 나 부러워하잖아. 엄마가 일한다고."
내가 아들 보다 무려 30년을 더 살았는데 내 집념이나 15살 아들의 집념이나 하등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엄마를 수학 선생님으로 여기며 이제껏 잘 따라 준 아들의 집념이 더 칭찬받아 마땅한 듯 하다.
내 눈에 씌어 있는 물고기 비닐 같은 속물적 시선을 벗겨내고
내 마음속 위선을 치워
내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경탄하고 감탄하며 바라보는 하는 엄마로 살고 싶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들이 삶에서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삶으로 말해 주는 엄마이고 싶고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따지는 것 보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따지는 엄마이고 싶다.
공부가 영 아니면 그건 세상 여러 가지 중에 하나일 뿐이니 기죽지 말라고 말해주는 엄마이고 싶다.
정말로 그런 엄마이고 싶다.
이런 엄마에게 집념과 사랑, 용기를 배웠다고 훗날 아들이 기념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제길.. 머릿속으로 수학 점수, 전체 평균 점수, 학원비를 계산하며 아이 몰래 뒤에서 실망하며 머리 굴리고 있는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엄마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를 양육하는 건 사실 내 마음을 함께 양육해 나가는 일인 것 같다.
엄마로서 내가 아이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반추해 보는 것,
잠시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며 아이를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엄마의 모습이 어떤 것일지 고민해 보는 것
이것이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의 일 아닐까?
큰 아이의 기말고사가 내게도 유의미한 시험이었던 것 같다.
나나 내 할 일 똑바로 하고 바르게 살아야겠다.
이따 큰 아들 집에 오면 꽉 안아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