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빈처>를 읽고
언젠가 읽은 적 있는 현진건의 단편소설 <빈처>를 내가 40살이 훌쩍 넘은 처(妻)의 처지가 되어 읽으니 여러 생각이 든다. 100년 전에 살던 소설가가 쓴 가난, 남편, 아내의 이야기가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싶고, 취미로나마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주인공인 남편이 겪을 창작의 고통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절대적 빈곤도 모자라 상대적 박탈감으로 마음 고생 하는 아내에게도 공감이 가서 쯧.. 거리면서 책을 덮었다.
<빈처>는 1921년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16살, 18살에 결혼한 남편과 아내는 6년 차 부부이다. 처가 덕에 집칸 장만하고 세간 얻어 살림을 시작했지만, 작가의 꿈을 꾸는 남편은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해가 졌는지, 날이 샜는지, 집에 쌀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살고 있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언젠가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빛 날 날이 올 거라며 위로해 주지만 사실 집에 있는 고물들이며 옷가지들을 모두 전당포와 고물상에 맡기거나 팔아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는 빈처(貧妻) 즉,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아내이다.
그런 아내를 볼 때마다 남편은 무능력한 자신이 한탄스럽고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는 아내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아내 역시 남편을 위로하고 응원하면서도 이웃집 남편이 자기 아내 선물로 산 양산을 보고 나면 바가지를 안 긁을 수가 없다.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세요. 우리도 남과 같이 살아 보아야지요."
어느 날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처형 얼굴에 멍이 있는 것을 보고 남편은 돈 있으면 다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아내는 한 술 더 떠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라고 화답한다. 아내 말에 남편은 이렇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라며 득의양양하였다. 남편은 한 번도 사 준 적 없는 새 신발을 처형에게 선물 받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생각한다.
"부득이한 경우라 하릴없이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지마는 기실 부족한 것이다. 다만 참을 따름이다..(중략) 아직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무명작가인 나를 저 하나이 깊이깊이 인정해 준다. 그러길래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도 참아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준 것이다."
이 소설은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 노력하는 아내를 새삼 이해하게 된 남편이 아내를 '천사'로 믿으며 아내의 허리를 잡아 바싹 당겨 안으면서 끝난다.
부부 관찰 프로그램인 [이혼숙려캠프]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보자면,
남편은 한량이다. 돈 벌어서 생활비를 보태줄 생각은커녕 종일 책이나 읽고 앉아 있다. 특별한 계획도 없고 돈만 생기면 책 한 권 더 사서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집안일도 안 하고, 책 보는 일이 아니면 멍하니 앉아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가족 행사로 처가댁이라도 갈라치면 못 마시는 술 먹고 인사불성이 된다.
반면 아내는 지지리 궁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활력 없는 남편 때문에 온갖 알바를 하고 있고, 집에 돈 될 만한 물건은 진작에 다 팔아 버렸으며, 도저히 돈 나올 구멍 없는 날엔 친정에 가서 동냥질해 오듯 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헤어질 생각이 없다. 남편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아내, 생활고를 혼자 짊어지고도 자신을 응원해 주는 아내에게 눈물겹게 고마워 '나를 원조하는 천사'라 믿고, 아내 역시 언젠가 남편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저 버리지 않으며 돈 있어 싸우고 헤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가난하더라도 사이좋게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뭐 다를까.
밥 굶는 가난 아니어도 소설 속 양산과 비단옷에 그쳤던 상대적 박탈감은 집값과 외식비, 해외여행과 명 품등 하도 많아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내가 바로 소설 속 가난뱅이 빈처 신세와 다름없이 여겨진다.
창작의 고통을 겪는 중인 남편을 보는 것도 말이 좋아 창작이지 창작하는 시간 빼고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당근 알바로 남의 집 강아지라도 봐줄라치면 그날 라면 값은 벌 것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책 만 보는 남편을 기다리고 헤아려줄 천사 같은 아내를 요구하다가는 이혼숙려캠프에 나가 서장훈에게 한 소리 듣던가 저쪽 프로그램에 나가서는 오은영 박사에게 책임감 부재라 지적당하기 딱이다.
시대는 변해 소설 속 아내와 남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그래도 삶에는 언제나 자신이 지켜내야 할 삶의 기준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 소양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는 것'과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참아내는 것'일 것이다. 세월에 지나고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이 살면서 지켜나가야 할 가치가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든 최소한의 미지노선 아닐까.
나는 저 말에 매우 분명하게 동의한다.
소유와 행복이 비례하다면 더 가지려는 욕망이 정당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다 알고 있다. 소유가 많지 않아도 정신적인 충만함, 만족감, 감사함을 느끼고 지킨다면 그게 행복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실제 체감하면서 살고 있기도 하다. 대신 소설 속 표현대로 애를 써야만 한다. 잠시 돌아보고, 생각해 보는 순간들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고 체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의지와 애씀이 동반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가난에 대처하는 천사 아내를 향한 극적인 감정을 서술한 탓에 표현이 약간 궁색하게 느껴지는데 통상적으로는 이렇게 표현들을 하는 것 같다.
'정서적 평안과 안정을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현재에 자족하며 감사해하는 것'
소설 속 부부가 계속 잘 살았기를 바라본다.
자식 태어나 더 행복을 느끼고, 남편의 글이 주목받아 책도 발간되어 수입도 생기고..
천사의 뒷바라지가 덕이 되고, 창작의 고통이 해산하여 빛을 보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근데 왜 나는 안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아무래도 나는 소설 <빈처>를 읽기에 적합하지 않은 독자 같다. 다만 내가 내 정서적 상태를 매일 돌아보며 사는 것이 일상의 중요한 출발점이고 이를 평상심으로 안정되도록 지키는 것 역시 내 노력이 필요한 일이며, 시시 때대로 찾아오는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내 수준에 맞추어 절제하며 사는 것이 성숙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현진건 작가가 알아준 것 같아서, 소설 속 남편의 속마음을 빌어 응원해 주는 것 같아서 약간의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오늘도 그렇게 살아봐야지.
정신적 행복에 만족하려는 노력과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참아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