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내 안의 우주를 탐험

의식이 닿지 못한 세계를 향한 한 걸음

by 사색하는 덕주부

우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별빛을 바라보던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우주를 만나게 됩니다. 『코스모스』가 인간의 눈을 들어 별을 보게 했다면, 이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는 그 시선을 우리 안으로 돌려놓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질서 속에 흐르듯, 우리의 내면에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존재합니다. 생각과 감정, 선택을 이끄는 그 질서는 외부 세계의 법칙만큼이나 정교하고, 때로는 별빛보다 더 먼 거리에서 우리를 움직입니다.

눈을 감으면 새로운 우주가 열립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별처럼 떠다니고, 의식이 닿지 못한 깊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조용히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별이 아닌, 마음의 우주를 탐험해보려 합니다.


내면으로 향하는 길




나는 누구인가, 나를 설계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살아오면서 나는 한 번도 내 마음이나 선택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원해서’, ‘내가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요?


가시나무라는 노래에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가사가 등장합니다. 이 가사처럼 우리의 몸은 수많은 무의식적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고 있으며, 의식은 오히려 그 흐름에 개입하는 예외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나의 행동 역시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반복 학습된 뇌의 회로들이 자동적으로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이글먼은 인간의 선택이 유전자와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 나의 행동을 결정짓는다면, 과연 그것을 ‘내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만약 나와 똑같은 유전자와 동일한 환경에서 자란 존재가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스스로를 믿고 싶어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나의 의지가 삶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이 믿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모릅니다. 무의식이 나를 설계하더라도, 그 설계 위에서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여전히 ‘나’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의 빛




‘모른다’는 말이 주는 용기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과학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결론입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인류가 알고 있는 우주에 대해 “우리는 바닷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뇌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이와 같습니다. 인간의 머릿속에는 아직 거의 밝혀지지 않은 또 하나의 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셈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결정적 도약 중 하나로 ‘과학 혁명’을 언급합니다. 과학적 탐구는 “우리는 모른다”는 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뇌과학은 지금 그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모른다’는 말에는 겸손만이 아니라 용기가 담겨 있습니다. 알지 못함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엽니다. 우리가 무의식을 탐험하기 시작한 이 여정은,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깨달음 이후, 인간에게 남은 것


인간의 뇌는 아직 거의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우주입니다. 그 안을 탐험하는 일은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탐구자가 됩니다. 그러나 지식의 여정은 언제나 책임을 요구합니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인간은 그 깨달음이 만들어낼 변화와 책임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앎을 해방이라 믿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무거운 책임이 기다립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통제하거나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일입니다.


지식의 무게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는 인간이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는, 우리가 알게 된 것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지식을 통해 신의 영역에 닿으려 했고, 마침내 그 힘을 얻었지만, 그 힘을 감당할 마음의 크기까지 함께 키우지는 못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그 책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한 인간의 실험과 그로 인해 드러난 인간성의 그림자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그것이 바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긴 오래된 물음입니다.




by 사색하는 덕주부

책을 읽고, 삶을 사유하며,

언젠가 아들에게 전할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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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 생성 도구를 통해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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