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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이름의 빛나는 하루

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7

by 시선

행복은 낡은 운동장에 있었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언젠가부터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달콤함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뉴스에 자연스레 시선을 빼앗기고,
끊임없는 보상을 기대하며,
낡은 것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새로운 무언가로만 자신을 덮으려 한다.


공허함이 찾아오면
무너질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무엇으로든 그 자리를 채우려 애쓴다.


그러나
삶이 조용히 빛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평범한 곳에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할머니가 늘 틀어두시던
‘6시 내고향’의 오프닝 음악이
창밖으로 흘러나올 때.


젊었을 어머니의 뒷모습이 사라졌던
그 오래된 골목을
무심히 지나칠 때.


아무것도 모르고 웃으며 뛰어다녔던
30년도 더 된 낡은 운동장 한가운데를
다시 천천히 걸을 때.


당연했던 것들,
어느새 잊고 지낸 한 조각의 기억이
감각으로 되살아날 때
우리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깨어난다.


그리고 나는
그때가 참 따뜻했음을,
그 시절의 내가 참 괜찮았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행복이란,
특별한 무언가에 있지 않고
아무 일도 없던 그 조용한 장면 속에
오래전부터 머물러 있었다는 걸
가만히 알아차리는 일이다.




꽃이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 모두,

한때는 처럼 빛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움에 닿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과 박수를 받기 위해,

때로는 스스로의 평범함을 감추며 살아가는 이들.
하지만 그 길 끝에 닿지 못한 삶들도 있다.

단 한 번도 꽃이 되어본 적 없고,
차마 꽃이 되려 시도조차 하지 못한,
그저 묵묵히 살아온 평범한 인생들.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 삶 역시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꽃보다 눈에 띄진 않더라도,
한 사람의 하루를 지탱한 존재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행복은

반드시 찬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받는 자격 또한,

눈부신 무언가를 이룬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도 충분히 그러했다.
아무도 주연으로 불러주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어준 것만으로
당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도 된다.
꽃이 아니어도,
당신은 이미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므로.




사라지는 이들을 위한 자리


진료실을 찾은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불러주는 데는 없지만,
가고 싶은 곳은 많지요.
이곳이 세상에서 내 이름 불러주는 유일한 곳이라 찾아와요.


진료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세상의 기준으로는
그 존재를 알아보는 이가 거의 없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의 눈에
언제 왔다 가도 아무도 모를 듯한 이들.
누구에게 특별한 도움이 된 적도 없고,
여유가 있어 자선을 해본 적도 없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만한 업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조용히 살아가다
하늘나라로 가면 되지 않겠냐며
자신을 세상의 아무런 존재도 아닌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그 노인의 이름을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한 번 불러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분은 더 이상 병명 속의 환자가 아니라
그 자리의 주인공으로,
오롯이 ‘한 사람’으로 눈앞에 선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


중학생 시절,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반장이었던 적도, 운동을 잘했던 기억도 없고,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었지만
그 친구는 늘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의 이름을,
친구들의 이름을,
늘 밝고 순수한 목소리로
당연하다는 듯 불러주었다.


어린 우리는
그걸 어색해하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야, 그냥 너면 되지, 왜 그렇게 이름을 부르냐”며
촌스럽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다.


공장에서 막 일하고 나온 복장으로도
언제나처럼 내 이름을 불러준다.

요즘은, 그게 이상할 만큼 좋다.
말없이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그렇게 불러줄 때면
나는 어느새 그 시간의 주인공이 된다.


가끔 문득 생각한다.

그 친구는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사람은,
이름 하나로
세상에 다시 놓일 수 있다는 걸.




빛나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


당신의 가치는

누구의 기준으로도 줄어들지 않는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당신은 처음부터 충분히 귀한 존재였다.


가치는 타인의 눈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것.


사랑받지 못할 이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신은 언제나,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빛을 마음에 살며시 품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괜찮은 오늘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길.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모든 것에는 금이 있다. 빛은 그 틈으로 들어온다."


— Leonard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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