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8
가끔, 우리가 한 말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툭 튀어나온 말 한마디,
뜻밖의 행동 하나가
어느새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고 나면,
무언가 어긋난 채
조금씩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차마 짚어낼 수 없어
그 순간의 내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 길을 따라
조용히 마음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숲 속 깊은 곳,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뿌리가 상해버린 나무를 만나게 된다.
우리 안에도 그런 자리가 있다.
말없이 감추고 살아온 상처,
미처 다 아물지 못한 마음.
두려움, 수치,
그리고 들키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
겉으론 괜찮은 사람처럼 살아가지만,
속에서는 여전히 울고 있는 마음이 있다.
머리는 애써 웃으라 시키고,
마음은 매일 울음을 참는다.
속은 깨질 듯 투명하고 연약한데,
겉은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조용히 굳어간다.
돌처럼 단단해진 그 모습은
어쩌면, 더는 다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넨 마지막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감정과 행동이 어긋난 채
우리는 천천히,
조용히 자신을 잃어간다.
끝내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들이
말 대신 몸으로 흘러나올 때,
통증은 오래 머물던 마음이
더는 숨을 곳이 없다는 걸
조용히 알려주는 방식이 된다.
다루지 못한 감정은
언젠가 나를 향하고,
그 모든 어긋남의 시작이
내 탓인 것만 같아진다.
그럴 때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조용히 스스로를 벌주며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지만,
사실은
가장 깊은 곳에서
내가 나를 가장 오래 아프게 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쪽 다리가 이미 온전치 못한, 인상이 거친 환자분과
그의 아들로 보이는 한 남성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은 고성이 오갔다.
아들: 아버지, 제 말 좀 들으세요!
원장님, 아버지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정신을 못 차리신다니까요!
아버지: 무슨 병원이야. 나도 다 알아.
의사 양반, 그냥 약 하나만 처방해 주쇼
아들: 이건 약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이미 다른 약도 엄청 많이 드시잖아요!
가만히 두면 진료실이 곧 싸움터가 될 것 같았다.
의사: 아드님, 답답하신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잠시만 진정하시고…
아버님 말씀을 먼저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어디가 제일 힘드세요?
아버지: 다리가 저리고 아파. 조금만 걸어도 주저앉아야 해요.
몇십 년을 이랬는데…
병원 와서 나을 거라 기대하진 않습니다. 부질없어요.
의사: 안 그래도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데
허리까지 통증이 더해지니 여간 힘드셨겠어요.
아버지: 내 인생이 원래 그래요. 신경 끄고 약이나 주세요.
기록을 보니
아버님은 암 치료 중이셨고,
이미 마약성 진통제도 복용 중이셨다.
아들의 말처럼,
더 이상 약으로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어 보였다.
아들: 아버지, 고집 그만 피우세요. 이건 수술이든 주사든 해야 한다니까요!
답이 뻔히 보이는데 왜 그걸 안 하세요?
아버지: 야!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어! 네 말이 다 맞아?
아들: 그러니까 아버지는 항상 이 모양인 거잖아요.”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팽팽했고,
아버님의 얼굴은
한 줄기 빛도 스며들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벽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이 진료실 안에서
가장 아픈 사람은 바로 아버님이었다.
의사: 아드님, 아버님께서 지금 너무 힘드셔서 그러신 거예요.
아버님, 한쪽 몸도 불편하신데, 허리까지 아프시니 더 막막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다 내가 병신 같이 살아서 … 그냥 죽는 게 낫지.
아들: “그런 말씀 마시라고요, 아버지…”
의사: 아버님, 지금 이 상황을 버티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통증을 줄이면 지금보다 생활이 편해지실 수 있으니 희망을 가지시지요.
아버지: … 뭘 할 수 있는데요?
의사: 현재 드시는 약들을 보면 더 이상의 약 처방은 오히려 간과 신장에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증상이나 엑스레이 소견상,
요추 5번과 천추 1번 사이 디스크로 좌골신경통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신경 치료를 해보고, 제가 일상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세를 알려드릴게요.
딱 한 달만 그렇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아버지: … 그게 뭐, 되겠어요.
아들: 그냥 해보시라고요, 아버지.
의사: 아버님, 마음 편하실 때 다시 오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 통증이 너무 큰 데다, 반대쪽 다리는 불편하시니 너무 답답하실 것 같아서요.
회복을 조금씩 느껴가면서 하나하나 바꾸다 보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실 수 있을 겁니다.
천천히 시작해 볼까요?
아버님은
마지못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신경치료 시술 공간에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5분 남짓의 시간이 주어진다.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짧은 순간,
그 아픔을 함께 지나며
자연스레 대화가 시작된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마음을 열고 협력의 문턱을 함께 넘는,
뜻밖에 깊은 공간이 되곤 한다.
아버님과의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그 마음의 결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나는 어느새
그분의 말 사이에
뭔가 설명되지 않은 상처가 있을 거라
혼자 짐작하고 있었다.
살아오며 남긴 상처들,
남들만큼 하지 못했다는 자책,
참아왔던 좌절이나 분노 같은 것들이
곧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아버님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아들에게 너무 못난 아버지라서,
아들이 데려올 며느리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될까 봐…
그 둘에게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라고 말했다.
험상궂은 얼굴,
차갑고 무심하게만 들렸던 그 목소리에서
뜻밖의 미안함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스며든 그 말은
마치 메마른 땅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천천히, 그러나 깊게 마음에 닿았다.
척박한 삶을 오래 살아낸 이의 체념이었고,
그 안에는
사랑과 부끄러움이 조용히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그 아들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하고,
왠지 모를 괴로움이 밀려왔고,
닿지 못한 마음이
서운함과 죄책감으로 번졌다.
말없이 쌓인 감정이
가슴 아래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아버님, 이렇게 몸이 불편하게 되신 건.. 결코 아버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분께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몸이 아플 때보다
마음이 아플 때,
우리는 더 자주
자신을 향해 화살을 겨눈다.
감정의 진실은 종종
가장 안쪽에 숨어 있고,
그 모든 고단한 흐름을
결국 자기 탓으로 돌리며
조용히 견뎌낸다.
그게 오히려
가장 덜 아픈 길이라 믿기 때문에.
“그냥 내가 없으면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불쑥 스치는 것도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덜 아프게 하기 위해
본능처럼 조용한 쪽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니까.
존재의 상처를 이겨낸다는 건
언제나 조용한 싸움이다.
자신을 탓하고 싶은 순간마다,
남몰래 웅크리며 견뎌온 마음의 무게는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더더욱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그날의 삶이,
그 순간의 고통이,
감당하기 벅찼던 것뿐이다.
당신은
그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애써 걸어온 것뿐이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더디고 아픈 일이지만,
누구를 탓하지 않아도
고요히 회복될 수 있는 길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자신에게 너무 서두르지 말고,
내면의 아픔 앞에
잠시 멈추어 서주기를.
회복은
조용히 선택하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아도,
누구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천천히 나아가는 당신의 발걸음이
이미 그 길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아직
자신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는
조용한 증거일지 모른다.
“It’s not your fault.”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 Good Will Hunting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