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10-1
기억은 늘 정확하지 않다.
과거의 한순간이
지금의 내 감정과 뒤섞이며
조용히 새롭게 쓰인다.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느꼈던 감정과 해석을
조각처럼 껴안은 채 살아간다.
기억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그 안에는
당시의 마음, 의미, 기대가 뒤섞여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다시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기억은
사소한 장면이었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지금의 나를 흔들기도 한다.
기억을 치유한다는 건
과거의 사실을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조심스레 꺼내
다시 이해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진료실에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붙잡고 들어왔다.
세상 억울하다는 듯,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곁에 서 있는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발목을 붙잡고 우는데,
엑스레이엔 이상이 없었다.
붓기도, 멍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가 제일 아팠어?”
잠시 머뭇이던 아이는,
자신이 반장인데
전학 온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밀었고,
그 순간 혼자 넘어졌고,
다른 아이들은 그 새로운 친구와 함께 웃기만 했다는 것이다.
속상한 마음에 선생님께 달려가 이야기했지만,
“고자질은 좋은 게 아니야.
그 친구는 이제 왔으니 네가 봐주자.”
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말했다.
“지나간 일이잖아. 그만 좀 해.”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아직도 지나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일부러라도
아이가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진찰을 이어갔다.
“여기는 좀 많이 아팠겠다.
뒤에서 밀렸다니, 깜짝 놀랐겠네.
그때 친구들이 옆에서
‘그러지 마’ 한마디만 해줬어도
조금 덜 속상했을 텐데.”
그러다 진찰을 하며
조금은 의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움켜쥐고 아프다고 했던 발목은
겉으로 보기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쪽 발목에는
살짝 긁힌 상처가 있었고
신발 안쪽엔 마른 흙과 모래가 꽤 많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짠했다.
정말 아픈 건, 따로 있었던 것 같구나.
정작 아팠던 건
아무도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
부정당한 감정이,
속수무책으로 외면당한 마음이,
몸의 통증으로 바뀌어 진료실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
내 편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으리라.
그 아이는
용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을 만큼
마음 둘 곳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통증이 금세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음이 괜찮다고
누군가 조용히 건네는 한마디였을지 모른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아직은 용서할 수 없어.”
“그 사람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그 말에는 이유가 있다.
무너진 신뢰에 대한 마지막 자존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분노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런 사람도 있다.
나를 상처 입히고,
가족을 해하고,
소중한 가치를 무너뜨린 사람.
믿고, 의지했고,
마음을 내어주었던 그 시간 위에
배신이 내려앉은 경우도 있다.
세상은 말한다.
용서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더 현명하다고.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사람은 이미 떠났는데,
왜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까.’
용서하지 못한 마음은
기억을 붙들고,
분노를 정당화하며,
나를 계속 그 순간에 머물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닌
나를 가장 아프게 만든다.
사실 상처받는 감정은
그 행동 자체보다도,
그 안에 담긴 의도,
그 사람의 감정,
그리고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용서란
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그때의 나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다.
그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기억 안에
붙들려 있지 않기 위해,
그 마음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용서란 잘못을 잊는 일이 아니다.
상처를 지우는 것도 아니다.
그날의 나를 부정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에게 머물러 있던
내 마음을 거두어 오는 일.
그 기억이 나를 잡아두던 힘을
조금씩 놓아주는 일.
그게, 진짜 용서이지 않을까
결국 용서라는 건
내가 충분히 준비되었을 때,
그리고 그 과정이
나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거라는 확신이 들 때
시작되는 것이 가장 좋다.
억지로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감정이 너무 깊이 남아
쉽게 놓아지지 않을 땐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조금씩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안에 조용한 평안이 찾아올 것이다.
사랑보다 어려운 것이
용서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저절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용서는 오직
선택으로만 시작된다.
사랑은 마음을 여는 일이라면,
용서는
한번 닫혔던 마음을
다시 여는 일이다.
사랑이 처음의 고백이라면,
용서는
상처를 안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두 번째 고백이다.
용서란,
그 사람 때문에 무너진 나를 회복하려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멈춰버린 나를
다시 걸어가게 하는 일이다.
다시 내 시간 위에
빛이 스며들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조용히 열어주는 일이다.
용서는 아픔을 덮는 일이 아니다.
그 아픔을 지나
다시 나를 살아가는 일이기에,
그건 결국, 회복이다.
"To forgive is to set a prisoner free and discover that the prisoner was you."
“용서는 죄수를 풀어주는 것이며, 그 죄수가 바로 당신 자신임을 깨닫는 일이다.”
— Lewis B. Sme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