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15
뇌과학에서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감정을 알아차릴 때
그 표정이 변해도 이전 감정이 잠시 마음속에 머무르는 현상을
‘긍정적 히스테리시스(Positive hysteresis)’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행복한 표정이 서서히 중립으로 바뀌어도
우리 마음은 한동안 그 사람을 여전히 ‘행복한 얼굴’로 인식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 ‘감정의 여운’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얼굴을 처리하는 뇌의 시각 영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영역이 전측섬엽과 내측 전전두피질을 이어주어,
감정이 너무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것이다.
마치 해가 진 뒤에도 한동안 붉게 물든 노을이 남아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그런 여운이 깃든다.
진료실에서 오랜 시간 만성통증을 앓아온 사람들을 만나면,
그 여운이 행복이 아니라 고통의 형태로 오래 머무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기당한지도 30년 째인데, 그걸 잊을 수가 없어요.
이제는 그 생각만 하면 온몸이 쑤셔요.”
“나만큼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도 없어요.
지금은 안 아픈 곳이 없어요.”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나한테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고
이제는 죽을 만큼 아픈 것밖에 없어요.”
이렇게 과거의 한 장면에 오래 머물러,
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마음도, 상황도, 관계도 정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일이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그 미해결의 감정은
서서히 몸의 언어로 바뀌어
불면과 통증이 되어 드러난다.
나는 매일같이 그런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과거의 어두움이 현재의 통증과 연결되어
끊어지지 않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감정과 통증이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가장 본질적인 진실이지만,
형태가 없어 손으로 잡을 수 없고,
익숙한 논리로는 쉽게 풀리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과거를 내가 어떻게 온전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충분한 위로를 건네는 일과 더불어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지나간 과거를 어떻게 잘 보내도록 도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보내기 어렵다면,
그 기억을 어떻게 아름답게 감싸
마음 한켠에 고이 둘 수 있는지도.
“원장님 말씀대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걷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귀찮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슬픔에 매여 있을 여유가 없으니 좋네요.
안 걷는 날이 오히려 답답해서 그냥 나가요.”
“화가 날 때 숨을 천천히 쉬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힘들 때 저도 모르게 호흡이 빨라지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더 잘 잡니다. 앞으로 더 잘해보려구요.”
“예순이면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어제부터 요양보호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제가 아직 쓸모 있다고 하니 기분이 좀 좋네요.
목 통증도 좀 덜 느껴져요. 아니면 바빠서 느낄 여유가 없는 걸까요.”
“어제 처음으로 밤에 TV를 보지 않고 나가서 뛰어봤습니다.
뭔가 오랜만에 성공한 기분이었어요.
한 번 성공을 경험하고 나니, 다른 것도 해보고 싶더라구요.
근육이 뭉치던 게 어제 샤워하고 나니까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게 신기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감정과 통증의 변화를 느끼며
하나둘씩 어둠을 걷어내고
오래 머물 수 있는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단 한 번이라도 그 변화를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미 회복의 길 위에 발을 내디딘 것이나 다름없다.
삶은 행복과 슬픔이 번갈아 드나드는 집 같다.
우리는 행복이 찾아오면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쉬어가고,
슬픔이 찾아오면
그 문을 닫고 창문을 활짝 열어
햇빛이 다시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행복은 오래 품어주고,
슬픔은 충분히 위로할 시간을 주되
끝없이 되새기지 않는 것.
때로는 그 슬픔을 조용히 떠나보낼 줄 아는 것.
그 균형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고,
서로를 감싸는 온기를 만든다.
그리고 언젠가,
슬픔이 불쑥 찾아와 마음을 적시더라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그 눈물 너머에는 반드시 새로운 빛이 기다리고 있고,
그 빛은 다시 우리 마음의 벽을 물들이며
다음 행복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제, 당신은 어떤 감정의 여운을 남기고 살아가겠는가.
“Don’t let yesterday take up too much of today."
'어제'가 '오늘'을 너무 많이 차지하도록 두지 말아요 그대.
— Will Rog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