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22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가 손녀를 안고 눈시울을 붉히던 날이 기억난다.
“내가 너 할아버지야.”
“아버지,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내가 죽을 때, 와서 떠나지 말라고 울면서 내 볼에 입 맞춰 줄 사람이잖니. 그게 바로 손주인 거야.”
그 당시 나는 웃으며
“아버지, 벌써 20–30년 후를 생각하세요?”
라고 가볍게 말씀드렸지만,
사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아버지께서
죽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일찍부터 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날이 정말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 자신도 두렵고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그 말에는 모두가 흐르는 시간 앞에서
한 번쯤 품게 되는 회고와 끝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었다.
삶이 꺼져 간다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씨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
그 말씀을 들으며 깨달았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움과 소멸로만 바라보다가
삶의 작은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두려움과 슬픔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삶의 빛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 삶의 빛을 더 선명하게 한다.
죽음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거창한 깨달음을 강요하는 일이 아니다.
눈앞의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이름을 불러주고, 곁을 지켜주는 것처럼 아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만들고,
기억을 함께 붙드는 그 모든 순간이 등불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방식이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숨을 몰아쉬며 수술방에 들어온 여섯 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심장과 폐가 좋지 않아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움켜쥔 채 떨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이의 생명을 지탱하는 장치와 꼬여 있는 선들,
그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의료진으로 가득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아이 머리맡에서 마취 준비를 했다.
춥고 불안했는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 다정히 말을 건넸다.
“많이 춥지? 걱정하지 마. 푹 자고 일어나면 훨씬 좋아져 있을 거야.”
아이가 너무 작고 상태가 좋지 않아 대답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엄마한테 울지 말라고 해주세요.”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엄마한테 울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네. 저 이제 괜찮아질 거니까요.”
그 순간, 분주하던 수술방은 고요해진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내게만 찾아온 정적이었을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만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일까.
죽음조차 삶의 빛을 완전히 꺼뜨리지는 못한다.
수술이 끝났다.
긴 여정 끝에 아이의 얼굴에는 아직 희미한 생기가 돌고 있었다.
생명은 때로 질기고,
동시에 고귀하다.
중환자실로 향하는 길,
복도 끝에 마흔 즈음되어 보이는 한 여인이 두 손을 꼭 모은 채 안절부절 앉아 있었다.
얼굴은 처음 보았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였다.
짧게나마 내가 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복도 끝이 다가올수록,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절망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머님, 수술 잘 끝났습니다. 아이가 엄마 울지 말라고 하더군요. 아주 씩씩했어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걱정과 불안으로 굳어 있던 얼굴에 서서히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짧은 한마디뿐이었지만,
적막한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켜진 듯했다.
그리고 그 빛은 나의 마음까지 비추어 주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꺼져가는 불빛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순간까지 어떤 빛을 품었고, 누구에게 건네주었는가이다.
삶은 길고도 짧은 여정 속에서 수없이 흔들리지만,
누군가에게 전해진 작은 불빛 하나는 오래도록 남아 또 다른 길을 밝힌다.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위로의 한마디로,
때로는 그저 곁을 지켜주는 침묵으로 이어진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가 남긴 빛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어진 불빛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견디게 하고,
삶을 조금 더 단단히 붙잡을 수 있다.
삶의 의미는 아마도 여기에 있다.
어두움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그 불빛,
그 불빛이 남긴 따뜻한 흔적 속에.
“It is not length of life, but depth of life.”
“삶의 가치는 길이에 있지 않고, 깊이에 있다.”
— Ralph Waldo Em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