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Epilogue
통증은 해결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없어져야만 하는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때로 그것은 우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는 회복의 가능성을 일깨워줍니다.
진료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몸의 통증만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길을 잃은 채 찾아옵니다.
대부분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 통증만 없어지면 괜찮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고통의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입니다.
허리나 목이 아파 병원을 찾은 분들 가운데,
수술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만은 아니었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병원을 옮겨 다니며,
값비싼 시술과 치료 끝에 여전히 아픔을 안고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낙심과 허무,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서려 있습니다.
그 마음을 생각하면,
‘조금만 더 버텨보세요’
라는 말조차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오기 급급했던 사람들,
사실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이겨내고 싶었을 사람들입니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혼자 일어서야 하는 적막함과 불안, 우울에 이미 지쳐버린 마음들이지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그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위로의 말일 것입니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제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원장님, 저는 아버지가 없었고, 어머니는 돈 버느라 저 신경 쓸 새가 없었어요.
사랑이란 건 받아보지도 못했고, 기억나는 건 아버지가 술 드시고 들어와
언니와 엄마를 때리던 기억뿐이에요.
남동생 대학 보내겠다고 재봉틀에만 앉아 젊은 시절을 다 보냈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슬프다고 느끼지도 못했어요.
이제 제 손주가 열두 살인데, 그 나이의 저를 생각하면…
나에게는 사랑의 언어가 없습니다. 저도 똑같은 할머니인 것 같아요.”
그분의 말은 이 시대의 고통에 대한 자화상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누구보다 손자에게 사랑받는, 따뜻하고 곧은 마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병원에는 늘 함께 찾아오는 가족이 있었고,
본인 또한 요양병원에서 다른 이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상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현재의 나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 곳은 없다."
그저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머물러
희망이 빛을 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누군가의 사랑이 닿을 때
그 빛은 다시 깨어납니다.
삶의 의미와 행복을 향한 여정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길을 걸어가게 하는 사랑과 용서, 위로의 동력이 없다면
그건 공허한 싸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실제의 통증을 이겨내는 과정조차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그 텅 빈 마음의 공간에
사랑과 용서가 다시 부어져야 합니다.
저의 글이,
그 빈자리에 조금이나마 스며드는 작은 사랑의 메시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 그 마음을 채워주기엔 너무 바쁘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이제는 우리 모두에게 조건 없이 사랑을 부어줄 수 있는
신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통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견디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 속에서 변해갑니다.
우리는 피해야 할 자세들을 기억하고,
걷고, 달리고,
조금씩 우리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회복의 방법입니다.
시간과 움직임, 그리고 몸의 기억을 되살리는 훈련 없이는
그 어떤 시술과 약물도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병원의 치료만으로는 완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용기,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결심일 것입니다.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그리고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작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넘어지고, 주저앉고, 다시 일어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혼자서 일어서기 어려운 순간에는
누군가의 손이 필요합니다.
그 손이 바로,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안되면, 함께하면 됩니다.
울고 싶을 땐 울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항상 울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웃고 싶을 땐 웃으세요.
그저 웃음이 낯설어진 것뿐,
웃음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습니다.
고통은 당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내면을 밝히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입니다.
삶의 속도와 모양은 달라도,
우리는 결국 같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누구도 역행할 수 없는 인생의 강물 위에서,
당신의 여정이 더욱 빛나길 바랍니다.
넘어진 사람을 함께 일으켜 세우는 일,
누군가의 걸음 곁에서, 저도 조용히 배우며 자라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상처와 외로움 속에서도
빛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 빛이, 당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이 오늘도 견디고 있는 그 아픔이,
언젠가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따뜻한 손이 되기를.
그 손끝에서,
당신의 삶이 다시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가 사랑하는 시 한 편을 통해,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건넵니다.
그동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When we honestly ask ourselves which person in our lives means the most to us, we often find it is those who have shared our pain."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준 사람이다.
– Henri Nouw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