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간 인연에게 보내는 안부
지나간 인연 중에는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건넨 말 없는 다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비 오는 날이었다.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역 앞 버스 정류장 아래에서 우산 없이 서 있었다.
그날따라 비는 무례하게 퍼부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기 몸부터 챙기기에 바빴다.
누군가 내 앞에 조용히 우산을 내밀었다.
"받으세요."
말도 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우산만 내밀고 돌아섰다.
내가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을 땐
그 사람은 이미 골목 어귀로 사라지고 있었다.
뭔가를 돌려주거나,
인사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나는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조건 없이
그저 따뜻한 마음 하나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사람.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우산을 쓸 때마다 그 얼굴을 떠올렸다.
또 누군가 비에 젖은 채 서 있는 걸 보면
그 사람처럼 나도 우산을 내밀어야 할 것 같았고.
누군가를 기억하게 되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매일 마주쳤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람이 있고,
한 번 스쳤을 뿐인데
그 따뜻함을 오래도록 품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이름도, 얼굴도
나는 결국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의 따뜻함은 내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언젠가 그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조용한 안부 하나로 떠오르길 바란다.
말은 없었지만,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제야 말해본다.
고마웠어요.
그때의 당신이 참 따뜻했어요.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말 없는 안부》는 토/일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