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졌다고 해서 사라진 건 아니니까
잔 하나가
고요히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무언가를 채우기보다,
오늘은 비워두기로 한다.
텅 빈 잔 앞에 조용히 앉아,
나도 마음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차를 따르지도 않고,
무언가를 채우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빈 잔을
그 자리에 놓아둔다.
쓸모 없어진 것이 아니라,
비워졌기에 가능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건 기다림일 수도 있고,
멈춤일 수도 있다.
한때는 차오르던 감정들로
넘쳐흘렀던 마음이
이제는 고요히 머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리던 날들,
끝없이 이유를 찾고
자꾸 의미를 부여하던 내가
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조용히 빈 잔을 내려놓는다.
“비워졌다고 해서,
사라진 건 아니니까.”
그 문장 하나가
마음 안쪽에 잔물결처럼 번진다.
어쩌면 비워내는 연습은
내 마음을
가장 단단하게 해주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보다
이대로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조용히 마음을 채워간다.
그래서 오늘은,
빈 잔 하나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기로 한다.
"가끔은 비워낸 마음이
가장 깊은숨이 된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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