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없이 머문 자리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나는 그늘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햇빛을 쫓고
누군가는 바람을 따라 걷지만,
그날의 나는
그냥 멈추어 있기로 했다.
움직이지 않기로 한 순간,
세상의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바람 사이로 섞인 아이들 웃음,
나무사이로 스며든 빛줄기,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나는 삶의 다른 순간을 바라본다.
잠시 비껴선 하루의 틈에서
오래된 상념들이
햇빛 아래 길게 드리우듯
내 안의 그늘도 또렷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늘이란 건
빛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었다.
어둠이 아니라,
빛과 함께 오는 정적이었다.
그늘에 앉아 있는 동안,
조금씩 가라앉는 마음을 꺼내 들여다본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오후,
무언가 재촉하지 않아도 시간.
그늘 아래 있는 나도,
햇살 한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틈에서 알게 되었다.
오늘, 당신도 잠시
햇살이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그늘이 되어주는 시간에 앉아보길.
"아무 말 없이 머문 자리,
그곳에서, 당신의 하루도 잠시 쉬어가길."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