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게 순서를 붙이는, 무의미하면서 의미 있는 행동.

by 아니아즈



"넌 첫 번째 구름이야."



이제 6살이 된 사촌 형의 아이가 검지 손가락을 쭉 피고,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구름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던 구름을 가리키더니, 다시 말했다.


"넌 첫 번째 구름이야."


그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왜 모두에게 첫 번째라고 하는지.

구름에 순서를 붙이는 그 의미 없는 행동을 왜 그토록 당당하게 하는지.

그런 의문이었다.


"왜 모두가 첫 번째 구름이야?"

"모두가 첫 번째가 아니면 슬프잖아." 아이는 내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당차게 말했다.

"근데 모두가 첫 번째면 순서를 붙여주는 의미가 없잖아. 그리고 구름에게 순서를 붙여주는 건 의미가 없어. 구름은 언제 흩어져 사라질지 모르니깐."

그 물음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음으로 답했다.

"왜 의미가 없어? 내가 순서를 붙여줬잖아."

내게 돌아온 질문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아이가 구름에게 순서를 붙여주던 행동은,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구름에 순서를 붙여준다는, 의미 없는 행동을 한 순간, 그 행동에 의미가 생겼다.

바람에 흩어져 사라져 버릴, 기억에서도 사라질 구름들에게 의미가 생겼다.




의미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본 하늘이란 푸르른 바다엔 유유히 헤엄치는 하얀 양들이 있었다.

그 몽실몽실한 털을 가진 양들의 이름은 바로, '구름'이었다.

뾸뾸거리며 하늘을 거닐고 있는 구름들을 보며, 속으로 엉뚱할지도 모르는 상상을 했다.





지금 나와 마주친 저 구름은, 수많은 구름들 중 몇 번째 구름일까.




구름의 순서를 생각하는 그 행동은 덧없었다.

구름에게는 순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름이 생성되는 순간도 다르고, 그 속도도 다르기에.


그리고 지금 내 눈앞을 떠다니는 저 구름은, 어느새 아스라이 사라질 구름이다.

구름은 바람에 자연스레 흩어져버린다. 그리고 다시 응축되어 구름이 된다.

언제든지 사라지고, 언제든지 나타나는 존재. 내게 한 마디 없이 사라지는 존재.

그런 구름에게 순서를 붙여주는 행위는, '허무'와 같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은 '허무'라고.

우리의 세상은, 구름에게 순서를 붙여주는 것과 같이 덧없다고 말한다.

세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에도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한다.

이런 '허무'의 세상에서 삶의 이유 또한 '허무'이다. 삶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허무'의 세상은 사람들도 허무에 빠지게 만든다.


나 또한 그런 허무에 빠져 있었다.




나는 말했다.

이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고.
구름의 순서도 없다고.
삶의 이유도 없다고.



나는 구름에게 순서를 붙여주는 행위가 허무했고, 내게 세상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이유 또한 허무했다.

무의미한 세상 속에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고통과 고독의 시간이었다.

마치, 숨을 쉴 수 없는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매 순간이 숨 막히고, 그 누구도 없는 검은 공간에 홀로 던져진 그런 기분.

그런 늪에 빠진 삶을 살아가던 나는, 아이의 '왜 이유가 없냐.'는 한 마디로 알게 되었다.


내게 구름에게 순서를 붙여주는 행위가 의미 없었던 이유를.

세상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를.

삶의 이유가 없었던 이유를.

내 안의 모든 것이 허무가 된 이유는 생각 외로 단순했다.




내가 '허무'라는 세상의 끝에서 멈추었기에,
모든 것이 '허무'가 된 것이었다.

내가 찾던 세상은 '허무'의 너머에 있었다.
단 한 발짝 너머에.


우리의 세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의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행동이란 아무런 이유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삶이란, 그런 덧없는 행동의 연속이다.
세상은 본래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이유를 붙이는 순간 존재하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의미가 존재하지 않기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구름에 순서를 주는 것에 의미는 없지만, 구름에게 순서를 주는 것처럼.

그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으로, 한 줌 재로 사라졌을 구름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된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세상에 내가 의미를 부여함으로,
그 세상이 살아 숨 쉰다.

그것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의미 없어 보이는 한 발짝. 멈추는 것이 아닌, 앞으로 내딛는 한 발짝.

구름에 순서가 없음에도, 순서를 붙여주는 한 발짝.

그 행동으로 구름들에게 의미가 생기고, 구름들에게 순서가 생긴다.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에 사라져 버릴 구름의 순서들이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질 기억들이지만.

구름에 순서를 붙여주는 덧없는 그 행동을 한 순간, 그 행동에 의미가 생긴다.

내가 그 구름에게 순서를 붙여준 그 순간, 구름과 나는 이어진다.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며, 우리의 삶도 만들어가는 것이다.


삶이란, 삶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넘어서,

삶의 이유를 만들어가며 나아가는 것이다.

삶의 이유를 모르기에, 과연 삶의 이유란 무엇인지 찾는 여정.

그런 한 발짝을 내딛는 여정이다.

우리의 세상은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제 말한다.

이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고.
구름의 순서도 없다고.
삶의 이유도 없다고.


하지만, 한 발짝만 내딛으면 찾을 수 있다.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한 발짝.

그 한 발짝으로, 구름에게 순서가 생기고, 삶에 이유가 생긴다.

이 세상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무의미한 행동으로, 의미를 붙여줌으로 세상은 의미를 갖추어 간다.

의미 없는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한 마디를 하늘을 향해 외쳐본다.

푸르른 하늘을 헤엄치는 구름 하나를 가리키며 말해본다.




"넌 첫 번째 구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