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여행

홋카이도 이야기 열, 오타루

by 김바다





반가운 호텔에 들어섰을 때,

길고 긴 한숨이 안도로 바뀌었다.

엉망진창이던 기분도,

내 머릿속을 딱딱 구리가 쪼아대던 한국에서의

전화 목소리도 어쩐지 잠잠해졌다.


들어선 안락한 호텔 방

어디에서도 소리 없이 고요했고,

오래된 호텔의 낡고 익숙한 것들에 대한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짐을 내려놓고 그저 침대 위에 몸을 쓰러뜨렸다.

하루 반나절 만에 “뭐가 이래?”라며

기나긴 오늘을 다시 떠올렸다.


“더 이상!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


더 이상의 관광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어진 여행에 지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예쁘고 반짝이는 것도 더 이상 요하지 않았다.


누워 있으니 허리와 무릎의 통증이

심하게 자극되었다. 눈물이 찔끔 나와

한국의 집으로 순간이동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불가능할 터...

나는 땀 젖어 꼬질한 몸뚱이를 개운하게

만들고자 대욕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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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오후 6시 무렵.

호텔 이용객들은 모두 외출한 듯

실내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혼자 전세 낸 것처럼 대욕장을 즐겼다.


가볍게 샤워를 한 후,

야외 온천탕으로 뛰어들었다.

물의 온도는 꽤 높아서

처음에는 앗! 뜨거워 놀라버렸지만

익숙해지니, 덕분에

알싸한 무릎 통증이 잦아들었다.


모양과 크기가 불분명한 돌들이 둘레를 이루고,

뜨거운 온수가 계속해서 졸졸 쏟아져

순환되는 물웅덩이 속에 몸을 웅크려 앉았다.


천장이 뚫려 어둠 내리려 들던

겨울 하늘을 바라보았다.

물속은 뜨겁게 몸을 데워지는데,

무수히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물 밖은 어깨와 얼굴을 차갑게 얼렸다.



대욕장을 여러 웅덩이를

놀이공원 탐험하듯 누비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야외 온천탕에 들어섰을 때,

하늘에는 어둠이 가득했고.

까마득한 밤에 콕콕 작게 박힌 별들이

저 멀리 아릉거렸다.


그저 온천탕에는

근처 조명들이 따스하게 공간을 비추어 들었다.


조명들이 비춘 빛은 물 위

동그란 달덩이가 되어 일렁였다.


그것은 너무나 보석 같고 유리 같았다.

손으로 모두 쥐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찬란한 빛의 조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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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구나.

비롯 뜻하지 않게 오타루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네만, 홋카이도에서 보았던

수많은 반짝임을 다시 회상하였다.


빛을 따라온 여행이 아니라,
빛을 만들고자 했던 시간들이라...


원하든 원치 않든 달갑지 않은 사건들이

오늘날 지금 누리는 평화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였고,

또한 무탈할 수 있음에 감사를 느끼게 했다.



‘가치’란 특정한 장소나 상황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네.

결국 나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더는 예쁜 것들을 계속 보고 찾기를 아니하였고,

되려 쉼을 선택함으로써

반짝이는 빛을 찾게 되었어.


그건 우연히도 나를 힘들게 했던,

고독하게만 했던 지난 기억들을

무색하게도 지워버리는 것만 같아.


에이, 새삼… 이라며

또 한 번 그렇게 넘어서게 만들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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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게 있어

각별히 여행을 사랑하게 되었던 건,

수많은 경험을 만나게 해주는 설렘도 좋았지만...

다름 아닌 그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감사한 것들을 누리고,

살아가는지를 여행이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소중한 것들을
그리 쉽게 잊고, 간절함마저 지우지.


시련 없이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그것이 없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알 수 있으려나.


대욕장에서 나온 후 나는

호텔 방에서 일찍이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호텔의 따뜻한 조식으로

홋카이도의 유명한 수프카레와

오타루의 신선한 해물이 듬뿍 올려진

카이센동을 맛보았다. 따스하고 근사하였다.


멋진 레스토랑은 아니었지만, 맛있고 즐거웠다.

유명 관광지를 누비는 탐험은 없었지만,

여유의 쉼과 평온의 시간들을 알게 해 주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여행이 되었다.


나는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여느 날보다

더 반갑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늘 더할 나위 없이 참 좋은 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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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홋카이도의 수프카레와
카이센동은 정말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야!
수프카레는
꼭 튀김을 적셔 눅눅해 부들해진 맛을 먹고,

카이센동은
고추냉이와 간장을 뿌려 비벼진 맛을
듬뿍 떠먹고자 함에

나는 그 여느 반짝이던 순간을 보던 것보다
더 오감이 동시에 불꽃놀이 마냥 터지면,
저마다 찬란해지던걸 기억해.


by @kimbada4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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