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잃은 허탈한 여행자

홋카이도 이야기 아홉, 오타루

by 김바다



불행

그 언제나 행복이 가득한 순간에 불쑥,

달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오는 걸까?


그것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누군가의 질투와 횡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실은 진정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한 까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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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오르골당 건물을 나서면,

사카이 마치 거리가 이어진다.


그 길에는 유리공예 공방과

작은 소품 가게들이 줄지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간혹 맛있는 먹거리를 파는 포장마차,

훈훈한 냄새가 나는 길거리 음식점들이

후각과 시각을 총 동원하여

나를 설레게도 유혹하기도 했지만,

어마무시한 인파 속에서

나는 용기가 없어 머뭇거리기 바빴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카페로 들어섰다.


들어선 카페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가득하다.

허나 조금 동떨어진 곳,

입구 쪽의 빈 테이블 한 자리가 눈에 띄어

냉큼 자리를 맡았다. 그리고 카운터로 향했다.




일본에서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아쉬울세 없이

일본식 드립커피가 항상 대신해 주었다.

물론 평소 선호하지 않은 타입이었지만,

어쩐지 일본에서는 입맛에 잘 맞아 들었다.


강한 향은 없다만,

묵직하고 진한 목 넘김을 주던 드립 커피가

진하고 꾸덕한 에스프레소 비교할 것 없이

그 나름대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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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커피를 사랑하는 방식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드립커피는 필터로 조금 내리는 커피는
시간이 오래 걸려 기다림을 가지게 하지만,
빠르지 않던 방식으로 인해
순간의 기억을
오랫동안 되새기게 하던 건 아니었을지.



그것은 찰랑이는 커피로

농밀한 맛을 자아냈다.


단순히 쓰다는 것을 넘어

무겁고 낮게 타고 드는 탄 맛인데,

그 진한 맛이 좋아 자꾸 탐내었다.

게다가 따뜻한 커피와 함께하는

달콤한 디저트는 근사한 시간을 선사했다.


작은 애플파이가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져 흘렀다.

쌉쌀하던 맛 사이로 흐르던

오아시스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지난 여행자의 피로를 달래 주었다.


조금씩 사라지는 그것들이

꽤나 서운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카페 안 사람들.

각자의 울려 퍼지던 목소리를 피해

얼른 조용한 호텔로 가길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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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눈여겨보았던 길거리 상점에서

호텔에서 먹을 간식을 포장했다.

그리고 신이 나서 그만

발걸음 속도를 높이다가 아찔한 순간에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닌 길에 쌓인 눈은

대부분 녹았지만,

건물이 그늘져 차가운 기온이 유지되면서,

다시 얼어붙어 아이스링크장 못지않은

빙판이 되었다. 나는 이를 간과했다.


그 빙판에 미끄러져

앞으로 곤두 박아 넘어져버렸다.

순간, 아!! 카메라...

내 몸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카메라를

얼싸안았기에

몸이 바닥에 더 세게 부딪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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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럽고 차갑고… 부끄럽고.


수많은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어느 일본인의 “다이죠부데스까?”

라는 그 다정함도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내가

사라져 버리면 좋을 텐데…

인어공주가 슬픈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엔딩이 그저 부러울 따름.

‘아... 신이시여,
이 순간 투명인간이 됨을 허락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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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찌그러진 간식에 얼굴을 구겼다.

카메라를 살폈다. 넌 무사하였구나~

다행히 카메라의 안전을 챙기고

얼른 이곳을 떠나자 싶어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분명 시작할 때는 걸음이 가벼워,

그리 험하지 않던 길도

끝으로 향할 때 길만큼은

얼마나 험하고 고되게 느껴지던지...


무릎과 허리를 삐끗한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망가진 간식들이 나를 끝없이 슬프게만 해.


그때쯤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고 싶지 않았으나,

번호를 보니 일과 관련이 있는 듯하여

전화를 받았다.


“저기, 서류가 덜 들어왔어요.

기한이 임박하니 오늘 빨리

보내주셔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분명 일을 모두 마치고 여행을 왔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고 굳어버렸다.


“그럴 리가요!”


알고 보니 누락된 서류가 있었고,

즉시 일처리를 요구했다.

여행 중이라 어렵다고 전했지만,

곤란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여

머릿속을 끔찍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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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씨름을 몇 분째 하다가,

전화 속 그는

“그럼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연락 주세요”

라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낮에 보았던

증기를 뿜는 시계탑이 된 것만 같았다.

대체 오늘 왜 이래? 삼재인가?

허탈한 영혼 잃은 여행자는

투덜거리며 걸어 호텔에 당도하였다.








by @kimbada4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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